젊은 소셜 앙트러프러너를 위한 CMXC에 다녀와서...
삶은 용기에 비례해 넓어지거나 줄어든다
아쇼카 코리아에서 아시아의 젊은 사회적 기업가가 모이는 써밋에 함께 갈 한국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했을 때가 지난 3월, 그러니까 이제 막 SXSW에 갔다가 서울로 막 돌아왔을 때다. 미쿡 물 처음 마시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좀 있고 뭐든 다 씹어먹어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때, 바로 그때.
내 손으로 지원했지만 내가 '그' 아시아의 젊은 사회적 기업가로 중 하나로 뽑힐 줄은 솔직히 몰랐다. 기대하는 마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밑져야 본전인데, 까짓것!' 그랬었다. 그랬다, 다행히 그때 용케 용기를 냈었다. 그 덕분에 살면서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친구들과 5박 6일의 환상적인 여름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다.
용기와 두려움은 한끗 차이일지 몰라도 경험의 있고 없음은 완벽한 다름이구나. 그래, 저지르고 볼 일이다.
Changemaker x Change(이하 CMXC, 링크)는 궁극적으로 '젊은 사회적 기업가를 위한 커뮤니티 플랫폼(a global collaboration platform for young social entrepreneurs)'이 되기를 지향한다. 각국의 젊은 사회적 기업가를 선발해 각자가 가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경험, 노하우를 공유하고(peer to peer learning), 사회 혁신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함께 발견, 발전시키고(co-creation), 써밋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세계를 하나의 큰 커뮤니티로 만드는(human connection) 프로그램이다.
Ashoka가 주최하고 Robert Bosch Stiftung이 후원하는 CMXC는 2012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한 이래, 터키 이스탄불, 모로코 마라케쉬 등에서 매년 열려왔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 6일까지, 처음으로 아시아, 일본에서 아시아의 젊은 소셜 앙트러프러너를 위한 CMXC가 열렸다.
일본,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독일 그리고 한국에서 온 19명의 소셜 앙트러프러너가 6월 1일 히로시마 후쿠야 백화점 꼭대기 (장소명부터 이미 맘에 든) Panorama 'Beer' Garden에서 처음 만났다.
솔직히 말해,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 써밋의 참가자들이 이렇게 쟁쟁하고 멋진 친구들인지 상상도 못했다(아무 생각 없이 간 건 아니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기도). 그냥 어느 나라에서 오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다시 말해, 잘생겼는지 아닌지), 뭐하는 친구들인지 아주 러프하게 궁금한 정도? 지금 책상 앞에 앉아 한명 한명 다시 떠올려 보니 세계 곳곳에서 자신만의 건강한 소셜 미션을 가지고 멋진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내는 친구들이었는데 이 친구들과 5박 6일의 시간을 보낸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싶다. 심지어 하나같이 잘생기고 예쁜데다 미천한 나와 함께 가라오케에서 놀아준 대-단한 친구들을 소개한다!
#1 독일의 진짜 교육혁신을 위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가르치고 배울 수 있게 만드는 Jannis
#2 소셜 벤처를 창업 전 선배 사회적 기업가에게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Project Together의 Michael
#3 사회적 기업가들이 필요로하는 리서치, 데이터 분석을 제공하는 Vera
#4 소셜 벤처 제품을 쉽게 구매하고 구매한만큼 관심있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부할 수 있게 설계한 Fred
#5 학교에 다닐 수도 일을 할 수도 없는 난민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독일의 청년들이 스스로 교환할 수 있게 만든 Nina
#6 소셜벤처계의 YG를 꿈꾸는(두유 노 싸이?) 언더독스의 Suhan
#7 교육의 판을 흔들기 위해 모인 대학생 프로젝트 그룹 프로젝트 위기의 대표 Jinu
#8 급전이 필요한데 빌릴데가 없는 대학생들을 위한 협동조합 키다리은행의 Hawon
#9 아티스트는 작품 전시할 공간을 얻고 투숙객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BnA Hotel의 Taz
#10 작은 텃밭에서 오바짱(할머니)이 기른 정성어린 농산물을 도시의 청년에게 공급하는 Haruka
#11 농민들의 일년 농사를 망치는 맷돼지를 잡아 도시에 육류로 공급하는 Saki
#12 로컬 현지인과 제대로 된 여행을 만드는, 아이 셋을 기르는 워킹맘, Ha
#13 시장에 내다팔 순 없는 저품질의 꽃을 농민에게 직접 고품질 만큼의 가격으로 사서 화장품으로 만드는 Nadya
#14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드는 말레이시아 최고의 메이커 스페이스 BijiBiji의 수장, Gurpreet
#15 청년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홈리스를 위한 집을 만드는 Johnson
#16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드는 Design & Research Lab의 Gerson
#17 공유하면 할수록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상의 모든 선(Good)을 소셜 컨텐츠로 만드는 The Hidden Good의 Jiezhen
#18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민자들이 겪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학교의 설립자이자 군인인 Sazzad
19명의 참가자도 물론 멋지지만 이번 써밋을 함께 준비하고 현장에서 고생한 스탭들도 핵짱멋! Ashoka Turkey의 Matthias와 Nick, Ashoka Japan의 Nana와 Hiro, Ashoka Korea의 하늬커와 형석커, Ashoka Washington D.C.의 Amy, Tsuwano의 멋진 청년들 Kenji와 Chikara, 그리고 일본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더' 젊은 소셜 앙트러프러너 유스벤처 친구들까지, 모두가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정말 수고해줬다. 혼또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이 서른여명의 소셜 앙트러프러너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 저마다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떻게든 비즈니스로 또 혁신적으로 풀어보려 애쓴다는 것
둘. 아침부터 밤까지 24시간 내내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로 아이디어와 체력이 넘친다는 것
셋. 술을 기가 막히게 잘마시는데다 강남스타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부르며 말춤을 출 줄 안다는 것
넷.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늘 정성스럽게 귀기울여주고 더 좋은 면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이 친구들의 유쾌하고 재밌는 프로젝트와 사회적 미션은 조만간 다른 글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커밍쑨.
히로시마에서 버스로 2시간여를 달리면 도착하는 츠와노(Tsuwano)라는 작은 마을에서 사흘밤하고 반나절을 보냈다. 츠와노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지리산 산골짜기와 꼭 닮은 '진짜' 시골이다. (서양애들은 갓 모내기를 끝낸 논을 보곤 'Wow, Amazing' 하면서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는데 한국이랑 너무 똑같아서 우린 시큰둥- 먼산-)
매년 관광객이 꽤 찾아 온다고는 하지만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절이나 신사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관광 스팟은 전무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정가운데 작은 천이 흐르고 그 천을 따라 형성된 Main Street에는 130년된 사케집같은 오래된 가게들이 곳곳에 흩어져있다. 마을을 둘러보는데는 천-천히 걸어도 넉넉히 잡아 2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런 마을에 왜 온걸까? 힐링이 메인 컨셉이라면 맞긴 맞는데..
츠와노에서 우리 일정의 절반을 보내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Founding Base(링크)라는 일본의 젊은 사회적 기업가 친구들 때문이었다.
Founding Base는 Takashi Sasaki(CEO-LEFT)와 Kenji Hayashi(CEO-RIGHT)라는 젊은 두 대표와 청년들이 만든 회사인데, 쉽게 말해 명문대를 나오고 도시에서 성장한 젊은 청년들이 시골로 내려가 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모르거나 잊어버린 중요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고 있다.
가령, 교장 선생님을 포함한 교사들은 물론이고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동문인 츠와노고등학교가 3년전 신입생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었다. 고향과 학교를 아끼는 교장 선생님은 시(정부)에 SOS를 쳐보지만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게 언제쩍인지 기억할 수도 없을만큼 노령화된 시골에서 학교를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 때마침 Founding Base 친구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그들의 솔루션은 이랬다. Teach for America를 Teach for Japan으로.
시골로 내려와 안정적으로 안착하며 돈도 벌고 싶은 도시의 청년들에게 시에서 받은 도시재생지원금으로 월급을 주는 거다. 교사 신분은 아니기 때문에 수업은 할 수 없으니 수업이 끝나면 'Hanko(조선시대 향교와 같은 말이다)'라는 Learning Center에 아이들을 모아 교과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필요한 배움을 제공하고, 도시의 수준 높은 교육을 스터디해 '코디네이터'의 신분으로 교사의 수업을 지원한다. 츠와노에 내려간지도 올해로 3년차, 폐교가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효과가 있었다는 건데, 학생들 중 상당수가 다른 도시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필드 투어때 나의 짝이 되어준 Genta도 도쿄 근처에서 유학을 와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고,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온 친구도 있었다.
도시에서 온 한 친구에게 도시의 학교와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미루는 선생님이 없다"고 답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질문을 하면 다음에 찾아오라고 대답하는 선생님이 없단다, 이 말을 듣는 모든 어른들은 빵터졌다가 다시 숙연해졌는데 그만큼 교사-학생의 관계가 매우 두텁고 가깝다고 했다.
이외에도 130년이 넘은 사케가게에서 새 제품을 만드는 것을 함께 하거나 Saki처럼 지역 농민들과 맷돼지를 잡고 이를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는 등의 여러 프로젝트를 한다. 도쿄대, 게이오대같은 일본 명문대 뿐만 아니라 UC버클리 등 유학파들도 츠와노에 내려와 곳곳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츠와노와 히로시마에서 한 일(?)은 별 것 없다. 컨퍼런스 기획자라면 누구나 알만한 그런 프로그램이다.
- 각자가 주목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과 임팩트를 공유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았고
-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 있는 츠와노의 곳곳을 둘러보며 함께 배우고 깨닫는 짧은 여행을 했고
- 각자가 가진 경험과 지혜, 재능과 지식을 나누는(엇! 딱 위즈돔이네*_*) 시간을 가진 다음
-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유지하며 콜라보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 히로시마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하는 피칭 이벤트도 가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닥 새로울 건 없었다. 하지만 신선했다. 모르는 사람을 그것도 외국인을 만날 때 느끼는 생경함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있을때 에너지를 내뿜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게 아니라는데서 오는 안도감과 각자 그린 그림은 달라도 함께 하면 더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끈끈한 연대의식 같은 걸 우리 모두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 일정(이라고 했지만 그 뒤에 진탕 술 먹고 밤새 가라오케에서 춤을 췄음)은 히로시마에 있는 히로시마 평화 박물관을 관람하는 일이었는데, 한시간여 둘러보고 나온 나는 마음이 엄청나게 복잡했었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피해자였고, 히로시마 원자 폭격이 큰 전환점이 되어 광복을 맞았다고 역사 시간에 배웠으니 마치 그 일을 행운처럼 나도 모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만이 피해자가 아니었고 더이상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다음을 고민하고 나아가야했다. 아무튼 엄청나게 복잡한 이 순간, 박물관 바깥으로 나와 먼저 나와있던 친구들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고 장난을 치고 싶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 인터뷰 영상을 보며 꺼이-꺼이- 울던 나는 어디로...
그런데 이 이상한 에너지를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히로시마 평화 공원 바닥에 둘러앉아 마지막 랩업을 하면서 깊은 우울감을 느꼈음에도 서로를 보자마자 마음이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CMXC는 '이것'을 가지고 있었다. 끈끈한 연대의식. 스스로를 changemaker라고 정의하고 그 삶을 살고있지만 문득문득 내가 제대로 가는건지 의심이 들때마다 다시 꺼내볼, 동료들이 있다는 든든함.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포장만 그럴싸한 컨퍼런스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할 긴 여정의 한 정류장이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게 달랐다.
But we are beautifully, finally, achingly, alone.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혼자가 되었고 동료가 옆에 있든 없든 두 발로 뛰는 건 언제나 자기만의 몫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강한 무릎이 없으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이 여정은 너무 고달플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랜만에 보고싶은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너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달라고. 너의 찬란한 이야기들이 더욱 반짝일 수 있게 한국의 내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고 싶다고. 장담하건대 이 친구들이 도대체 무슨 작당을 하는지 제대로 듣는다면, 어제처럼 살기 어려울 수 있다. 손 내밀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무릎에 힘을 넣을 수 있다.
한 예로 시리아 난민과 베를린의 청년들이 재능과 지식을 직접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든 Nina의 이야기를 듣다가 Ashoka Japan의 디렉터인 Nana가 말했다. "유노왓? 일본이 지금까지 시리아 난민을 몇명이나 받아준 줄 알아? 단, 4명이야. 난 정말 그게 너무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이다. 나는 시리아 난민에 대해 슬퍼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지만 한국 정부가 시리아를 포함해 난민에 대해 어떤 정책과 노선을 가지고 있는지 민간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일절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정부는 앞으로 5년간 150명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런 내게 지금 니가 느끼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Nana는 말했다.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라고, 그럼 된다고.
그렇다, 앞으로 나만 알기엔 아까운 이런 이야기를 공유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런 친구도 있다는 약간의 자랑 플러스 허세도 함께:)
우리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We are changemak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