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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Jul 09. 2016

회의적인 회의와 안녕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우리 회의나 할까?> 김민철

책을 다 읽고나면 줄을 치거나 모서리를 접어놓은 부분만 모아 컴퓨터에 옮겨 적는게 나의 책 읽기의 마지막 단계다. 


몇해전 갤럽에서 개발한 강점 찾기 테스트(Gallup Strength Finder, 링크)를 했더니 나의 강점 5가지 중 하나가 'Input' 우리말로 탐구심이 나왔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탐구심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당신은 탐구적이다. 당신은 물건들을 수집한다. 단어나 사실들, 책 또는 인용문 등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아니면 나비나 야구 카드, 인형이나 옛날 우표와 같은 물건들을 수집할 수도 있다. 무엇을 수집하든, 그것은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수많은 것들로부터 흥미로움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바로 그 무한한 다양성과 복합성 때문에 흥미롭다. 당신이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다면, 그것은 꼭 당신의 이론들을 더 세련되게 다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료 보관소에 더 많은 정보를 넣어두기 위해서다. 혹시 여행을 좋아한다면, 이것은 각각의 새로운 장소마다 신기한 물건들과 새로운 사실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입수해서 저장해둔다. 왜 저장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저장하는 순간에는 언제, 왜 이것을 필요로 하게 될지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 보자. 이것들이 유용해질 날이 올지 혹시 아는가? 어쨌든 당신은 이런 모든 가능성들을 생각하면서, 버리기를 꺼린다. 그래서 당신은 계속 물건이나 아이디어들을 수집해서 쌓아두고 정리한다. 이것은 재미있다.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어쩌면 어느 날,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이것들 중 무엇인가가 가치가 있다는 것이 증명될지 모른다. 


정확했다. 우표나 엽서 수집에는 소질이 없지만 책을 사서 버리는 법이 없고, 초등학교때부터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는 빠짐없이 모아 보관하고 있으며, 3-4년 전부터 책을 읽고나면 언젠가 써먹을지도 모를 좋은 문구들을 모아두고 있었으니까. 


오늘 밤도 지난 달 말에 다 읽은 책들을 모아다가 접어놓은 페이지를 펼쳐 옮겨적고 있는데 한 권의 책의 접힌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읽다, 이걸 처음 읽던 날 너무 내 얘기같아서 사진까지 찍어 동료에게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하며 메시지를 보냈던 게 기억이 났다.


오늘의 책 <우리 회의나 할까?> 어떤 부분이 딱 내 얘기 같았냐면...


"그런데 나는 팀장님 이야기가 뭔지 알 것 같아. 팀장님도 너도 비슷한 성격이라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생각했어."

"뭐가 비슷해요?"

"팀장님이랑 너는 딱 기준을 세워 놓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넘는 건 무조건 아니라고 말하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옳은 카피'의 범위가 지금 이 테이블 크기 정도라고 생각해 보자고. 팀장님은 여기 있는 딱 이 컵의 위치가 '옳은 카피'라고 생각하면 거기서 1밀리미터만 옆으로 가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딱 그 위치에 정확하게 맞는 카피만 정답으로 인정하고. 그 정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해서 중심이 잡히면 그 다음부터는 좀 다른 위치의 카피들이 들어와도 포용을 하거든? 이렇게 약간 극단적인 성격은 너도 비슷해.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둘의 성향이 비슷해서 남들보다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고, 팀장님이 '딱 거기'를 이야기하면 너도 '딱 거기'를 알아들어서 일 진행이 원활해지는 거지. 하지만 둘의 그 지점이 어긋나는 순간, 둘 다 극단적으로 자기들만의 '딱 거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가 없는 거지. 그런데 너는 팀장이 아니라 팀원이니까 어느 정도 맞춰 줘야 하는데, 넌 셩격상 이해가 안되면 절대로 카피 못 쓰잖아. 그러니까 계속 '아닌 카피'만 쓰는 거지."


TBWA라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인 김민철씨가 4개의 광고를 만들기 위해 박웅현 ECD를 포함한 카피라이터들과 회의한 내용을 회고한 책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지식노동자들이 '크리에이티브'에 한맺힌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카피와 광고를 연달아 몇개씩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하나 궁금해서 집어왔는데 그 궁금증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아니, 해소될 수가 없겠지. 비결이 딱히 있을 수 없으니까) 술술 읽기 좋았다. 그건 그렇고, 위의 내용이 왜 내 얘기 같았냐면, 그러니까 나도 딱 저렇기 때문이다. 


열번이면 여덟, 아홉은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나만의 기준이 명확하고, 그게 여간해선 잘 무너지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답을 말하는 동료들에게 말은 '다르다'고 하면서도 '틀렸다'고 말한 적이 많았다. 그래놓고 자기만의 로직이 있는 대안이라면 언제든 수용 가능하니 언제든 편하게 얘기하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었구나 싶다. 


그런데 이건 내가 리더일때도 그렇지만 팔로워일때도 그랬다. 그래서 상사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 또는 강요할 때 '다르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틀렸다'고 생각해 이해가 안되면 끝까지 이해를 못했다. 다행히 저 경우처럼 나 역시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 다시 말해 케미가 잘 맞는 상사들을 만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아주 자주 있진 않았지만. 


궁금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와 케미가 맞는 비슷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랑만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매번 비슷한 아이디어만 반복될 뿐이라 360도 다른 관점의 시도는 불가능할테니까. 사람 성격을 고쳐 먹는다는게 쉬운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늘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덮어놓고 제쳐둬서 좋은 싹을 모조리 잘라내 아무것도 수확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답 없이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옳고 그름 두가지로 나눠 보지않고. 다름을 유의미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 다시 읽으며 드는 생각은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내가 동료보다 '한 템포만 먼저'하면 조금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중심이 잡히면 그 다음부터는 좀 다른 위치의 카피들이 들어와도 포용을 하거든?" 이 말처럼 나 역시 내가 비교적 중심을 잘 잡고 논리와 솔루션을 갖춘 다음에는 다른 의견이 들어와도 곧잘 수용하고 유연성을 발휘한다. 내 논리가 빈약할 땐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안맞는 것 같고 안되는 이유 투성이 같지만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다듬으면 할만하겠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게 생각하기 나름인데 이 생각을 지배하는게 어쩌면 내가 내 아이디어와 기획과 방향을 스스로 얼마나 신뢰하느냐, 자신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동료들보다 딱 한 템포만 먼저, 빠르게 움직여서 잘 다듬어 놓으면 회의실에서 갓 태어난 좋은 아이디어를 죽이거나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 거다. 


일련의 생각들을 하면서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믿고 자신하느냐는 자존감에 기인한다는 걸 깨달았다. 자아가 흔들리면 일도 흔들린다는 것을. 


일도 잘 안풀리고, 제대로 되는 것도 하는 것도 없다고 느껴진다면 스스로를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는지, 밥만 먹고 술만 마실게 아니라 좋은 공기도 좀 마시게 해주고 햇빛도 자주 쏘이게 해주는지 관찰해보면 어떨까? 우선, 나부터. 주말 내내 일하던 랩탑을 덮어두고 맥주 대신 몸에 좋은 차나 시원하게 타서 선풍기 바람 쏘이며 책도 좀 읽고 그림도 그려보자.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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