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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xploring myself Oct 03. 2021

작은 용기를 낸 나를 칭찬해

먼저 문을 두드리는 것의 마법

나는 사람들 은근히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나의 행동과 말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거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는지 누군가와의 만남이 종료된 후 자꾸 지난 상황을 곱씹어보곤 한다. 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은 나의 과한 방어 기질이 발휘 된 것이 더욱 큰 것 같다. '나에 대해서 실망하면 어쩌지?', '내가 사실 별 거 없다는 게 탄로 나면 어쩌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는 나의 부족한 부분이 커져 보이면서 자신감 없는 생각을 되뇌게 된다.


이러한 의식이 바탕이 되어서 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곤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정말 간단한 부탁인 경우에는 쉽게 부탁을 하곤 하지만, 타인에게 어느 정도 이상의 수고가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나, 내가 부탁을 했을 때 거절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하곤 한다. 결국 혼자 문제를 가지고 풀어보기 위해 끙끙 앓던 나는,,, 헛시간만 끌고 결국에는 "도와주세요,,, "  하며 뒤늦게 도움을 요청하는 꼴이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내가 몇 날 며칠을 혼자 고민하거나 '이 부탁을 했을 때 과연 먹힐까,,,'했던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막상 부탁을 하고 나면 상대방에게는 이것이 큰 수고를 요하는 일이 아니었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간단하게 해결되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일어나곤 한다.




요즘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며 교수님에게 컨택 메일을 보내고 랩실에서 연구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리는,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겪는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패기롭게 '대학원에 갈 거야!' 결심을 했지만, 학부 시절과 전혀 다른 전공에 타대로 진학을 희망하는 나에게 일면식이 전혀 없는 교수님에게 연락을 드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문과생이 공대 진학을 하기 위해서는 따라잡아야 할 것도 많은데 전일제도 아니고 회사를 병행하는 파트타임 지원이라니,,,? 교수님들은 연구실에서 상주하는 학생들을 원하고, 인기 랩실은 전일제로 진학하려는 학생들로 이미 차고 넘친다는 커뮤니티 글들을 수없이 봐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래도 연구실에 나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관심 있는 연구실들을 몇 개 추려서 컨택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들이 이렇게 무서운 존재였었나,,,? 메일을 보내고 나서 답장이 언제 올까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하기만 했다. 답장이 아예 오지 않는 경우에는 시무룩해지기도 했지만 면담 요청에 응해주시는 교수님들도 계셨다. 결과적으로 나는 동기가 다녔던 랩실의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통해 긍정적인 답변을 받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입학에 필요한 추천서를 써 주신다고 하셨고 나는 지원 후 다시 연락드리기로 했다.


몇 주일이 흐르고 대학원 접수 기간이 다가오자 대학원 공지사항에는 학업우수장학금을 대학원 지원과 함께 신청할 수 있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다만, 교수님의 장학금 추천서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 2년 전액 혹은 반액 장학금을 받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이지만,,, 타대생에 파트타임인 나에게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주시려고 할까? 또 우수한 학생들이 이미 많을 텐데,,, 거절당하고 부끄러우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추천서를 부탁드리는 것이 정말 망설여졌다. 이번에도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생각으로 패기롭게 나를 장학생으로 추천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쓰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다만 부끄러우면 안 되니까,,, 내가 왜 진학을 하고 싶은지, 진학 후에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를 담은 자기소개서를 양심껏 정말 열심히 작성해서 함께 보냈다.


공포의 보내기 버튼


지금까지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면 금방 답장을 보내주시곤 하셨는데, 이번 메일은 달랐다. '왜 평소보다 답변이 늦으시지? 역시나 아닌가?'  혼자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메일을 기다렸다. 다음날 밤, 속이 좋지 않아 뒤척이다 새벽에 깨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려고 보니 '첨부의 파일을 활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일이 교수님으로부터 와 있었다. 괜스레 긴장되는 마음으로 파일을 열어보았는데 웬걸?! 교수님께서 정말 정성스레 장학금 추천서를 작성해주셨다. 게다가 반액 장학금도 아닌 전액 장학금 추천서를 써 주셨다(ㅠㅠ)


메일을 받은 그날 밤에는 기뻐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아직 대학원 입학을 한 것도 아니고, 장학금을 탄 것도 아니지만 내가 대학원과 장학금을 모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뻤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 언니를 만나서 장학금 추천서 부탁을 드려도 될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랩실에 컨택이 쉽게 된 것도 원래 그 랩실에서 연구했던 동기가 나를 교수님께 추천해서 모든 것이 '동기 빨'로 성사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언니가 해준 다음과 같은 말에 용기를 얻었고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원래 대학원은 다들 그렇게 들어오는 거더라
우리만 해도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하면 더욱 믿음이 가잖아?
추천을 받아서 일이 쉽사리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도 네가 쌓아온 경험들과 만남이 축적된 결과인 거지. 그러니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좀 더 가져도 돼



우린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 일이 많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망설이는 나를 밀어줄 친구와 방아쇠를 당길 용기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김은주 (8pg)

 

https://www.youtube.com/watch?v=2uuMMvkN-vo

김은주씨의 '나를 지키는 법'에 대한 세바시 강의

이 세상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할 일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내가 되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매일 조금씩 노력하고 성장하는 내가 된 것이 이미 준비가 된 상태가 아닐까. 내가 나약한 생각을 하게 되면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으니 내가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는 연습을 꾸준히 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작은 용기 었지만 '보내기' 버튼을 누른 나를 칭찬해본다.


조금 떨렸지? 그렇지만 충분히 멋있었어. 잘했어.



+) 대학원, 그리고 장학금까지 정말 붙는다면 스스로를 아주 칭찬해 줄 예정이다!

준비 과정에서 많이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에게도 맛있는 것들을 잔뜩 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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