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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Feb 19. 2017

태풍이 지나가면

대만 2박3일 여행기

비는 더욱더 거세졌다.

나는 멍하니 구멍이 뚫린듯이 비를 쏟아붓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흐리멍텅해 가는 체념이 담겨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청춘을 보냈던 대만으로 다시 가는 여행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5년만의 회귀였다.


그리웠던 친구들. 신호에 맞춰 출발하는 스쿠터부대. 특유의 숨이 턱 막히는 공기.

이것들을 그리며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태풍이 온다는 예보와 회색으로 덮힌 어두운 하늘이 나를 반기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일기예보를 보니 저녁에 태풍이 대만에 상륙하며 관통을 하기 때문에 내일은 팅반팅커(휴교휴직령)이 내려졌다. 


다음날 아침, 내가 살았던 도시로 가기 위해 기차역에 갔을 때 상황은 내 생각보다 심각했다. 일반 기차는 모두 취소되었고, 고속철만이 오전만 운행하였다. 기차역에 내렸을 때는 역사 한 쪽에 폭포가 내리고 있었다. 순간 강수량이 600mm를 넘어 역사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던 빗방울이 폭포로 쏟아지는 광경과 창 밖의 나무가 머리채처럼 휘날리는 모습은 숙소에 갈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무거운 캐리어를 쭉쭉 끌며 쏟아지는 빗속을 30분동안 헤매어 숙소에 짐을 풀고, 친구들과의 약속 취소 통화를 끝내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터덜터덜 걸어나왔다. 


어느덧 해가 져 어둑해졌고, 항상 불야성을 이루던 야시장이 오늘은 대부분 상점의 불이 꺼져있었다. 간간히 사람들 줄이 서 있는 가게를 지나치다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볶는 가게 앞에 섰다. 쉴새없이 흔들리며 밥알이 촥촥 볶아지는 웍을 멍청하니 바라보았다. 지난 2주동안 대만여행으로 매우 들떴던 내가 생각났다. 왜 하필 태풍은 딱 내가 여행오는 날 왔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울고 싶다. 등등 많은 감정들이 머리 안을 둥둥 떠 다녔다. 웍 안의 밥알이 붕 떴다 웍 안에 내려 앉았다. 공중에 붕 뜬 밥알이 참 자유분방했다. 부우우우웅


아.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구나.


밥알은 촥촥 볶아지다 또 공중으로 붕 떴다. 촥촥 볶아지고 나서 일회용 도시락에 밥이 담겼다. 뒤의 아주머니가 빠르게 포장하여 학생에게 넘겨준다. 그러네... 그냥 먹고 싶은 볶음밥 먹으면 되네. 멍 때리고 있는 것도 괜찮네. 여행에 계획이 없어도 괜찮네. 저는 돼지고기 볶음밥이요. 포장해주세요.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 꺼진 조용한 야시장 거리 참 고요했으며 밥이 볶아지는 촥촥 소리와 함께 따뜻한 숨이 느껴졌다. 대만 3대 야시장 중 하나인 펑지아 야시장의 이런 풍경은 쉬이 볼 수 없다. 몇 개의 블럭에 걸친 거대한 시장이 항상 불야성을 이루고, 흥에 취한 젊은이들과 사람들의 왁자지껄함이 넘실대는 거리에서 고요함을 느낀 것은 아마 태풍 덕분이니라. 여행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어떤가? 난 지금도 충분히 평화스럽고 고요하며 낯설음을 느끼고 있는데... 굳이 계획이란 틀에 나를 넣지 않아도 좋지 아니한가?

태풍이 지나가고 날이 맑게 갠 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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