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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성찰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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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Feb 28. 2018

도시 속 군중의 건조한 삶 속 사랑

중경삼림(重慶森林). 고전영화 다시보기.

얼마 전, 좋은 기회가 생겨서 영화 중경삼림의 감상회에 다녀왔다. 영화를 잘 모르던 어린시절 TV에서 해 주던 이 영화를 보던 학생은 어느새 쑥 자라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홍콩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설레임을 담아 영화를 보면서 예전과 다르게 '아~ 저기 갔다왔는데...', ' 저 에스컬레이터에서 나도 쭈그려앉았는데...' 감탄사와 함께 홍콩을 여행한 기억과 처음 영화를 보던 그 시절의 나를 반추하며 행복하게 영화를 보고, 호스트께서 해주시는 영화에 대한 설명 및 관객들의 질의응답도 듣고 왔다. 


중경삼림(重慶森林). 영화 제목은 두 개의 단어를 합쳐서 만들었다. 중경은 광동어로 청킹이라 발음되며,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청킹멘션((重慶大廈)에서 따왔다. 이 곳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홍콩으로 이주한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들 또한 입주해있는 이태원 같은 곳이다. 삼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많은 나무, 즉 홍콩에 토착인으로 뿌리를 내고 살고 있던 광동인을 의미한다. (홍콩은 중국 광동 지역에 위치한 항만 도시로, 홍콩을 포함하여 중국 선전, 광저우와 함께 광동어를 쓰는 문화권이다.) 이는 영화를 이루는 두 개의 에피스드에서 주인공들이 쓰는 언어로 알 수 있는데, 첫 에피소드의 아무(금성무 분)과 마약상(임청하 분)은 만다린으로 얘기를 함으로써 타국에서 홍콩으로 유입된 외국인임을 드러낸다. (아무는 바에서 자신을 대만에서 왔다 소개하고, 마약상은 아무의 광동어 인삿말을 못 알아듣는다.) 이들의 에피소드에서 가장 강조되는 키워드는 유통기한이다.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 홍콩은 3년 후 중국으로의 반환이 결정되어 앞으로 어떤 알 수 없는 변화의 물결에 쓸려갈지 술렁이던 시대였다. 홍콩에 살고 있던 외지인들에게는 본국으로 돌아갈지 타국으로 떠날지 계속 홍콩에 남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유통기한이 1997년 7월 1일인...

두 번째 에피소드는 경찰 663과 그가 자주 가는 스낵바 점원인 페이는 홍콩인들의 모국어인 광동어로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둘의 이야기는 스낵바 Midnight Express, 663의 방과 그의 방에서 보이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가끔 마주치는 노상 음식점에서 그려지는 홍콩 본토인들의 삶의 터전을 위주로 진행된다. 이들의 키워드는 비행기와 캘리포니아다. 비행기는 지금의 공간을 떠나게 해주는, 머나먼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수 있는 수단이며, 캘리포니아는 예측할 수 없는 이상향을 의미한다. 1994년 홍콩인들은 중국반환을 앞두고 각자의 이상향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


두 에피소드 모두 남자 주인공들이 사랑하는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이를 극복하며 다시 현재를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담백했지만 열렬했던 사랑이 한 순간 떠난다는 것은 심히 공허함이나 무력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아무는 그녀에 대한 사랑의 유통기한을 정해놓고 그녀가 좋아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으며 돌아오길 기다리고, 663은 페이가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고 물컵을 바꾸고 음악 CD를 바꿔놓아도 알아차리지 못 할만큼 상심에 빠진다. 이들의 슬픔과 방황은 사이키델릭(Psychedelic)한 음악과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나만이 멈추어진듯한 삭막함이 느껴지는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도시를 보여주는 연출은 군중 속 고독을 극대화하여 보여진다.

 

아무는 사랑의 유통기한인 자신의 25번째 생일인 5월 1일 오전 6시에 한 여인에게 축하를 받으며 이 느낌을 통조림에 밀봉하여 만 년의 유통기한을 새긴 후 마음 한 켠에 간직하기로 하며 다시 오늘을 살아간다. 663은 자신의 방에 무단침입한 페이에게 아스라이 물들어가다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만, 예측불가한 그녀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훌쩍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1년 뒤 돌아온 그녀와 마주하는 633에게는 상처가 아닌 은은히 풍기는 페이의 흔적을 미소와 함께 가지고 있다.


예측불가한 삶에서 바람같이 스쳐지나가는 기적 또는 슬픔을 맞으며 사람은 살아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1994년 영화이지만, 2018년에도 전혀 위화감 없이 와닿는 이 영화는 나에게 통조림에 봉하여 만 년간 간직하고 싶은 감성과 군중 속 고독의 채취를 묻히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영화 속에서 제일 유명한 장면. (페이가 663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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