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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성찰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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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Jun 05. 2021

언젠가 먼 훗날에 바다로 간다던 달팽이는 도달했을까?

10대에는 밋밋했으나 30대에서는 눈물이 쏟아지는 노래. 패닉-달팽이

딩동 딩동 피아노를 잘 따라 치던 어린이는 학원 피아노 위에 놓인 가요 악보를 처음 보았다. 누런 두꺼운 종이에 인쇄되어 나오는 악보를 따라 치다 얼마 전 들었던 동화 같이 예쁜 가사와 멜로디가 좋았던 노래 악보를 발견하여 매일매일 수업이 끝나고도 학원에 남아 치다 악보를 외워버린 어린 나는 그 후에 가요 프로에서 1등을 하는 노래 중에 칠만하다 싶은 가요가 들리면 악보를 하나씩 사서 피아노 학원에서 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가요프로에서 1위 후보라며 두 남자가 나왔다. 색소폰을 부르는 남자와 말미잘 같은 머리를 하고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남자. 그룹 이름은 패닉이라고 했다. 다음 날 동네 문구점에서 악보를 사서 학원으로 냅다 달려 피아노 앞에 앉았다. 기대와 달리 무난한 멜로디와 진행에 한두 번 치니 금방 익혀졌고, 화려한 기교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노래였다. 재미없다며 한쪽으로 치워진 악보처럼 이 노래 또한 내 기억의 구석으로 치워져 버렸다.


패닉의 두 멤버는 나중에 각자 음반을 내며 본인들만의 음악을 구축해갔다. 색소폰을 불던 김진표 님은 래퍼로 한국 힙합계에 한 획을 그으셨고,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던 이적님은 지금까지 후배들과 가요 순위프로 1위 경쟁을 하는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시대를 뛰어넘은 음악인이 되셨다. 피아노 학원에서 뚱땅뚱땅 가요를 치던 어린이도 대학 입시를 위해 더 이상 피아노를 치게 되지 않았고, 솔로 활동을 하는 이적님의 음반을 하나둘씩 사서 등하굣길에 듣는 대학생이 되었고, 비싸게만 느껴졌던 콘서트 티켓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종이가루를 화려하게 날리던 2018년 코엑스 공연부터였다. 시원하게 내지르거나 가슴이 아려오는 곡들을 듣다 공연 중후반, 담담히 그리고 초연히 부르는 달팽이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분명 신나고 흥겹게 공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달팽이란 곡을 무난하게 부를 때 이상하리만큼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에는 그저 내가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가벼이 치부하였지만, 이후로 유튜브를 보다가, 예능프로를 보다가도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시 내 일상의 큰 기쁨은 욕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세파(世波)에 시달린 몸을 편안히 녹여주는 안락함이 매우 행복했기에 한창 입욕제를 모으며 코와 귀로 누릴 수 있는 이 작은 행복을 사랑하였다. 그래서 였을까?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내 안의 달팽이가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속삭이는 소리에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동하였나 보다.


찌를듯한 7월의 태양 아래서 자전거를 타고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내달려 닿았던 대만 타이둥(台東)에서 마주한 광활한 나의 세상 끝 바다, 자신만의 파랑(破浪)으로 먼 이국에서 달려온 여행자를 맞아주었던 태평양이 그려진다. 한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저 너머로 가볼까?'라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유명해지려는 것이 아닌 단지 수평선 너머가 궁금하였기에 바다를 건너고 싶은 것이다. '힘든 역경을 이겨낸 용기와 가져다 줄 희망'과 같은 아름다움은 모르겠다. 그저 내 안에서 말하는 대로 궁금하니까 가 보고 싶다는 순수한 그날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가슴 한 켠에 담아두었다.


세계를 휩쓴 신종 전염병으로 인해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조심스러운 작금의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달팽이를 조심스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의 틈새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왜 출근을 하고 돈을 벌어 생을 이어가야 하지? 이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세상 끝 바다 너머가 궁금하기에 이를 건너가기 위해 움직이는 나의 달팽이는 무언으로 그저 기어가고 또 기어갈 뿐이다. 태어난 이상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모든 생명의 명제이기에 나의 생활을 살아가고, 나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나의 움직임으로 자연에 어우러지려 한다. 언젠가 도달할 바다는 시리도록 파랗게 날리는 연기가 되어 달팽이가 건너가길 기다리고 있겠지. 그토록 궁금했던 바다를 건너고 나면 새로이 보게 될 신기한 바다 너머를 한참 구경하며 즐거워 할 나는 또 그렇게 살아가고 또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이 노래를 들어도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순간을 기다리며, 어릴 적 악보처럼 기억의 한 켠에 놓아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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