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Dunkirk) - 사선의 끝자락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IMEX를 잘 찍기로 유명하다. 전작인 인터스텔라에서 담아낸 그 광활한 자연은 감탄을 금치 못했기에 차기작 덩케르크에서는 어떠한 영상을 보여줄지 기대를 담아 영화관에 입장하였다. 그리고 처음 몇 컷이 지나 해안가에 펼쳐지는 인산인해의 광활함은 닭살을 돋게 하는 서늘함을 품고 있다.
영화는 동태를 살피기 위해 마을로 병사를 보내지만, 적군의 총알세례에 단 한 명의 병사만이 살아남아 해안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해안에는 셀 수없을만큼 많은 군사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배가 병사들을 태워 돌아가려 하지만, 적의 항공기가 쏟아내는 폭격에 침몰되기 일쑤다.
평화로운 어촌마을에도 배의 징집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해군에게 배를 내어주지만, 선주 도슨는 아들 피터와 직접 배를 몰고 전장으로 향한다. 우연히 배에 뛰어든 아들 친구 조지와 함께.
공중에서의 폭격을 막기 위해 공군 전투기 3대가 출격하였다. 돌아올 수 있는 연료의 양을 수시로 체크하라는 보스의 명령이 들으며 하늘의 전쟁터로 향한다.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의 폭력 안에서 살기 위해 처철하게 안간힘쓰는 이들과 언저리에서 이들의 생존을 기다리는 사람,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이 세 곳의 시점이 하늘, 땅, 바다를 자연스레 오가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파란 빛의 차가운 화면과 웅장하지만 고요한 음악은 전장의 음산함을 물씬 풍겨낸다. 가끔 떨어지는 폭격소리 외에는 비명하나 없을만큼 무서우리만큼 조용하다. 소리를 지른다한들 죽음이 도망가지 않으며, 그저 나한테 찾아오기 않기만을 바라며 납작 엎드려 있을 수 밖에 없다. 하나하나가 무한의 우주와 같다고 배웠던 생명이 종이장 찢기듯 쉬이 사그라든다. 슬픔, 존엄, 추위 등 감정은 거세되어지고, 무사히 귀환하기까지 살아야 한다는 목표와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남았다.
이 공포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를 놀란이 애정하는 배우 킬리언 머피가 맡았다. 이름조차 없는 이 역할을 왜 그가 연기했는지 충분히 와 닿는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온통 뒤엉켜있는 혼돈의 진창으로 빨려들어가 가련한, 이 영화에 등장한 모든 병사들의 내면을 상징하는 인물로 공포와 광기가 오가는 혼돈을 표출한다.
인물들은 필요한 말만을 한다. 그렇기에 사실적으로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상황을 관객도 느낄 수 있다.
공식적으로 모든 병사를 구하는 척 하지만, 영국군을 우선적으로 구조하려는 지휘관의 대사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에 대한 차별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결국 영화 중반에 표면화되어 폭발한다. 계기판이 고장난 파일럿은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항시 체크한다. 적기를 모두 격추시키지 않으면 폭격으로 인해 아래의 아군과 구조선이 침몰한다. 동료에게 끊임없이 물으며 서로의 전투를 독려하고 생존을 빌어준다.
선주 도슨은 아들 피터에게 바다에서 건져준 병사가 보이는 불안과 공포를 짤막하게 말해준다. '본래 삶으로 다시 돌아가 살 수 없을 것이다. ' (이 한 마디가 나중에 피터를 한층 성장시켜 준다.)
전투기가 날으는 하늘은 부드럽기까지 하고 아래의 바다는 청량하며 포근한 빛을 띄우는데, 그 푸르름 속에 있는 인간은 아귀도와 같은 전쟁 속에 갇혀 있음이 참 시리고 슬프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 (예를 들면 대형 사고, 천재지변, 전쟁 등) 역설적으로 국가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갖게 된다. 금전적 이익, 재산상의 손해가 아닌 국민의 생환이 무엇보다 1순위에 놓이게 되며, 우리는 생존자들의 살아남음에 감사하고 기뻐해준다. 언제나 조국(Home)은 나를 지켜준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영국인으로서 전투에서 패배한 아군을 무사히 귀환시키는 이 작전이 왜 사람들 마음 속에 남아야 하는지 귀환하여 열차에 올라탄 병사들을 향해 환호를 보내주는 사람들을 통해 담담하게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