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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성찰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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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Jan 13. 2019

애국자와 빨갱이

영화 1987을 보고

초호화 캐스팅을 뽐내는 영화는 사건 발행 시간에 따라 박종철 열사에서 시작하여 이한열 열사로 매듭지어진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에 있어 중심이 되는 자는 '탁 치니 억 소리 내며 죽었다' 말하는 박 처장이며, 우리가 믿는 정의와 대척점에 있는 자이자 현재 노년 세대의 내면을 표현하는 자이기에 나의 리뷰는 우선 그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다.


우선 남영동에서 고문을 가하는 이들은 이북 사투리를 쓰고 있다. 우두머리 박처장 또한 평안도에서 1950년에 월남한 자이다. 그들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박처장이 한병용 교도관에게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에서 해방 전후 세대들이 갖고 있는 공산주의와 빨갱이에 대한 공포를 보여준다. 굶어가는 아이를 걷어서 키워줬는데, 공산주의 전선에 들어가서 전쟁터를 전전하다 고향집에 오게 되었을 때 키워준 주인을 죽이며, "인민을 착취한 지주"라 부르는 모습 말이다. 왜 빨갱이라는 단어에 이를 갈게 되었는지, 이러한 이념 갈등이 그들 세대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박 처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후세대에게 내재되어 있는 트라우마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6.25 전쟁의 잔인함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 충돌의 전쟁이며, 전쟁으로 폭발되기 전까지 민간에는 수많은 학살과 반목이 있어왔을 것이다. 어제의 식솔이 오늘 나의 아비를 찔러 죽이고, 어미와 누이가 능욕당하며, 일제 시대를 견뎌내며 일군 땅을 가리켜 "인민을 착취했다"라고 떠들며 모든 재산을 몰수하는 공산당에게 어느 누가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오자, 38선이 그어지고 휴전선이 생기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졌다. 다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애국자와 빨갱이만이 있다. 

박처장이 빨갱이라 가려낸 이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박종철 열사는 녹두거리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즐겨마시는 대학생이었고,부모에게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로 유학 간 마음 한 켠이 뿌듯해지는 자랑스런 아들이었다. 그가 남영동 작은 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나올 때, 그의 가족은 소박하게 쌓아 올린 세계가 무너져 내렸고, 친구들은 죄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한열 열사는 조근조근한 말투와 폭력의 잔인함에 눈물짓던 대학생이었다. 다니는 대학교 티를 사 입고 타이거 운동화를 신었던 대학 캠퍼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춘이었다. 그가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순간, 또 하나의 가족은 오열을 하게 되었고, 친구들은 울분을 토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들은 슬프게도 6월 민주화 항쟁의 상징이 되었다. 


영화는 차분히 진행된다. 감정과잉 없이 발생한 일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실을 추구함에 들어오는 외압과 한쪽에서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폭력의 잔인함이 얼마나 섬뜩한지 보여준다. 해방 전후부터 군부독재를 지나며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었고, 이로 인해 또 다른 희생자들이 발생하였다. 사람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회와 역사는 공간을 넘어 계속하여 같은 굴레를 반복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어루만져 주지 않았던 상처들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로 안고 살아간다. 2017년도에도.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사회는 법에 입각하여 절차에 맞춰서 일을 진행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바로 세워주신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엄마 손을 잡고 걷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최루탄 가스가 너무 매워서 근처 약국에 뛰어들어가 급히 마스크를 사서 쓰고 집으로 돌아왔던 4살짜리 어린아이는 잘 자라서 이렇게 자유롭게 글을 쓰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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