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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성찰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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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Dec 19. 2018

타인을 깊이 이해하기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건

취업 스트레스를 도서관에서 그 날 그 날 관심 가는 책을 읽으며 묵히던 취준생 시절, 인터넷 기사를 보다 흥미로운 제목의 에세이 집을 소개하는 글을 봤다. 나는 왜 쓰는가; 지은이 조지 오웰. 나는 그의 대표작 동물농장과 1984를 사 놓았지만 아직 책장을 펼치지 못 했다. 어떤 글을 쓰는지 알지 못 하는 작가의 에세이 모음집이었으나 제목이 머리 속에 콕 박혀 있었다.

 2010년 국내 발행된 조지오웰의 에세이 모음집

사서가 정리하고 있던 새로 들어온 책들 사이에서 깔끔한 표지의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제일 먼저 빌렸다. 비록 완독은 못 하였으나 글 속에 슬며시 드러나 있는(현실의 취준생 관점으로 보면 매우 이해하기 힘든) 정신적 가치를 우선에 둔 그의 행보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마음에 남아있다. 그래서인가 지하철 역에 설치된 스마트 도서관에서 그의 자서전을 발견했을 때 주저 없이 대여 버튼을 눌렀다.


자서전은 시간에 따른 조지 오웰의 삶을 그의 심리와 함께 기술하고 있다. 어려서 어머니의 교육열에 힘입어 치열히 공부하여 명문 이튼 칼리지에 입학하고 나서 성적을 위한 공부는 손 놓고 여러 클럽 활동과 독서에 몰입하던 학창시절. 졸업 후 식민지를 관할하는 경찰관 시험에 합격하여 버마 지역에서 5년간 근무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런던으로 돌아왔으나 생활고에 맞닥뜨리며 접시닦이 등으로 생활을 연명하던 무명시절. 

그는 이 모든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바닥생활’, ‘ 버마시절’ 등을 쓰며 문단의 인정을 받는다. 이로 인해 여러 매체에서 집필 의뢰가 들어왔고, 그 중에 받아들인 탄광 지역의 실업 문제에 대한 르포 의뢰가 있었다. 그렇게 그는 위건 부두로 향하였다. 일을 찾아가는 길가에서, 여러 사람과 뒹굴며 잠을 청하던 여인숙에서 그는 두 달간 탄광 노동자로서 살아가며 워킹 클래스(working class), 다수의 노동자 계급인 사람들이 어떠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살아가는지 몸 안에 차곡차곡 쌓아간 그 경험과 세세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자루의 펜에 녹여 그려내었다. 그의 글은 잘 벼른 칼처럼 예리했으나 기저에는 같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오는 충격과 분노가 깔려있었으리라.


이 때쯤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의문이 되묻는다.
왜 넌 작품 하나 읽지 않은 조지 오웰의 일생에 이리 열광을 하니?


난 보통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엄마가 입혀주는 깨끗한 옷과 깔끔히 직접 해 주신 음식을 먹으며 크게 어려움없이 대학까지 졸업했고 회사에 취직을 해서 사회의 꿀벌로 하루하루 내 몫의 일을 한다. 매일 저녁 식탁에 앉아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과 의문점을 얘기하면 고기반찬을 밀어 주시던 아빠는 경험에서 나오는 의견을 말씀해주신다. 나에게 살아감은 무료할지는 몰라도 곤궁함은 아니다. 그러나 대문 밖을 나서면, 나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층계 높은 버스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노인, 차비를 지불하지 않는 승객과 실랑이 벌이는 버스기사, 지하철 출구에서 빅이슈를 팔고 계신 노숙인, 군고구마랑 군밤을 파는 다리가 하나 없어 목발을 짚고 있는 아저씨.


불쌍하다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들은 아무대서나 무단횡단을 하고, 신호위반을 밥먹듯하며, 담배를 피고 꽁초를 아무대나 버리거나 길거에 침을 뱉기도 하니까. 다만, 그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삶의 힘겨움이 나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나는 버스 층계를 오르내리기 힘들지 않다. 화장실도 갈 수 없이 몇 시간 내내 앉아 있지 않으며, 길에서 자 본적도 없을 뿐더러 항상 두 발로 서고 걷는 것이 당연하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기에 아예 모르는 열악함을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서 봐야 하는데 오히려 눈 감아버리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야. 내가 잠깐 도와준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 어차피 달라지지 않아. 당시에는 현실적인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이제서야 진실되게 고백하자면, 나 자신의 마음 속 평안을 위한 자기 합리화였을뿐이다.


조지 오웰은 겪어보지 않은 곤궁함 삶을 직접 느끼기 위해 그 삶으로 들어가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주변에서 관찰하며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 자신을 던지고 서늘한 이성으로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스스로가 타인을 설득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쓴다고 하는 작가로서 사회적 약자들의 상황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그 실행력에 항상 변두리 구경꾼으로의 인생을 살아온 나는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글쓰기는 바람에 날라가는 민들레 씨앗같은가? 아니면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찰나의 냉기인가?

깊이 이해하고 느끼며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며 글을 쓰기 위해 조지 오웰이 위건 부두로 걸어갔듯이 이제는 나도 그러한 목적지를 찾아 걸어가는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나는 왜 쓰는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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