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fuck'in start!

영화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

by 서영

이 영화에 대해서 리뷰를 쓰는 건 조금 어렵다. 너무나 깔끔하게 떨어지는 영화여서 단순하게 '좋다~'는 탄성 하나로 평을 대신할 수 있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영화 진행이 영화 초반에 사건이 터지고 그에 따른 여러 등장인물이 각자의 위치와 이해에 따른 행동을 그려가는 것이다. 영화는 중후반부쯤 관객으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범인이 누군지 영화상에서 보여주지 않을 거이며, 우리 영화는 범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작년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이 이러한 진행을 보여주는데, 역시나 범인이 누군지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 관객들 스스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작은 소도시에서 일어난 큰 사건을 매개로 길가에 설치된 3개의 광고판이 가져온 파장에 여러 인물이 얽히고 설히는 관계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과격하게 때로는 짜증나게 보여준다. 단순하게 피해자와 가해자와 목격자로 사건이 해결해 가는 것이 아닌 등장 인물 각자의 위치에서 이해관계 및 심경을 그리는데, 심지어 유족들조차 각자의 입장과 의견이 퍽 다르게 갈리고, 서로가 서로를 할퀴고 감내하고 짜증나는 감정이 뒤범벅되어 굴러감을 보여준다.


심리적으로는 좀더 극단을 널뛰는 영화이다. 무대포로 행동하는 주인공 밀드레드만 봐도 딸의 사건과 관련된 일에는 과격하면서 격정적으로 대처하면서 입장을 대립하고 있는 서장 월러비와 경찰 딕슨의 사적인 불행을 접할 때는 눈물을 글썽거린다. 딕슨은 인종차별주의자이지만 동료애가 있는 경찰이며, 서장 월러비는 사고를 치는 딕슨을 인정해주는 상사이자 가정적인 아버지이지만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결론을 내린다. 이들 외에도 난쟁이 제임스, 광고회사 사장 웰비, 밀드레드의 전 남편 찰리와 아들 로비 또한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을만큼 극단을 오가며 말하고 행동한다. 자칫 혼돈을 안겨줄 수 있는 서사이지만, 영화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이 극단을 깔끔하게 이해하게 하고 극에 몰입하게 한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선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대부분의 것이 선할 것이다 라고 은연 중 생각한다. 특히 대중적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을 판단할 때 자주 발생한다. 인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많은 입장과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때와 장소에 맞게 말하고 행동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를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정립하였다.) 그렇기에 모순되거나 대립될 수 있는 여러 행동과 말들이 한 사람에게서 모두 드러날 수 있다. 아니, 같은 말이어도 각자의 심경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 질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이를 인지하고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은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생명이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영화는 끝내주는 반전을 선사한다. 그 시작이 되는 병원 신에서의 카메라 시점은 붕대를 둘둘 말은 인물의 내면을 극대화하여 관객 또한 동화되게 한다. 아주 흔하디 흔한 작은 행동 하나였지만, 하나의 세계를 뒤흔들고 바꿀만한 씨앗이었다.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않고 나아지지 않았지만, 영화 크래딧이 올라갈 때 흐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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