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내고자 하는 절규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삶의 이유, 영화 갤버스턴

by 서영

툭툭 끊어지는 화면이지만 극 초반 주인공의 상황을 알기에는 충분하다.

잦은 기침이 이상해서 찾아간 병원에서는 심각하게 정밀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하며, 애인은 돈 많은 보스와 바람났다. 게다가 보스는 그에게 까다로운 일처리를 요구한다. 총성 없이 변호사를 손봐달라니... 의아하지만, 지정해준 업무 파트너와 변호사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낯선 자들이 덤벼든다. 함정이다. 총성과 옆에 꿇어앉은 파트너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귀가 먹먹해진다. 나도 모르게 살아야 한다는 본능에 상대에게 덤벼들었다. 격전이 오가고 찾아온 침묵 속에 살아남았나 자문과 함께 긴장이 풀린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식탁 한 켠에 결박당한 여자가 있다. 짐짝처럼 들어 차에 태웠다. 물어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마담이 보내서 왔단다. 집에 데려다준다고 하니 안 가는 게 낫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보스가 죽이려고 하니 당분간 어딘가에서 숨어 있어야 한다고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러더니 조금도 동요 없이 자기는 록키라고 소개하며 이름을 물어본다. 가짜로 둘러대려다 이름을 알려주었다. 로이라서 불러. 둘의 동행은 이리 시작되었다.


록키가 보기에는 로이는 알 수 없다.

흔히 남자들이 좋아하는 교태를 부리면 대부분 느물느물 웃으며 좋아라 자신을 안고 침대로 가는데, 자기에게 여자 질 하냐고 거칠게 으르렁댄다. 샤워하고 베스타월만 두른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고 침대조차 양보하고 소파에 앉아 잠을 자고, 화를 내다가 말을 잇지 못 하고 끊임없이 기침을 한다. 걱정이 되어 물 한 잔을 건네주지만,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돈을 핑계로 오스틴에 있는 자신의 집에 들르자고 했다. 그리고 어린 동생 '티파니'를 데리고 나왔다. 총성에 놀라 죽였냐고 묻는 로이에게 벽에 쏜 거니까 빨리 출발하라고 했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묵묵히 차를 몰았다.


차는 갤버스턴으로 방향을 틀었다.

파란 바다와 모래사장이 있는 어느 호텔에 차를 세우고 방을 빌렸다. 주인이 날카로운 눈매로 우리를 의심하듯 봤지만 순순히 방을 내어주고 티파니에게 예쁘다며 엄마 미소를 지어준다. 바다를 처음 보는 티파니를 위해 록키는 해변에 물놀이를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본다. 말없이 같이 해변으로 나가 뛰어노는 록키와 티파니를 바라보기만 하는 로이이지만, 그동안 낯을 가렸던 티파니는 이제 그가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파란 바다와 황색 모래사장이 명확한 대비를 이루는 이 곳 갤버스턴은 보스를 피해 양아버지를 피해 도망친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낙원이었다.


관람 내내 왜 감독은 영화 제목을 갤버스턴으로 지었을까 궁금했다. 우습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갤버스턴에서의 로이와 록키는 아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말다툼하고 불안에 떨다가 귀여운 티파니가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모습에 미소 짓고 호텔비를 내기 위해 돈을 마련하려는 모습이 흔히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었다. 일상을 꾸려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평범하다 표현될 만큼 둘은 험한 인생을 살았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몸을 팔았던 둘이 이 곳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으려 한다.


로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호텔 주인이 잘못을 짚어주며 날카롭게 말하지만 지난 사정을 잘 알지도 못 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내지른다. 나날이 심해지는 기침을 보면 살 날이 많지 않음이 느껴지는데 호텔 사람들에게 티파니를 잘 돌봐달라 부탁하고 록키에게 앞으로의 삶을 말한다. 어쩌다가 차에 태우게 된 사람이잖아. 너랑 전혀 상관없잖아! 그런데 왜?

삶의 끝자락에서 소중한 것이 하나도 없는 로이에게 둘은 진실되지 않지만 간절히 기대어 오는 존재였다. 돌아오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기침을 심하게 하면 걱정 어린 손길로 물을 건네주고, 조심스럽게 같이 물놀이 가달라고 부탁하고, 뚱한 표정으로 같이 밥을 먹는 삶을 만들어 주는 존재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갱생할 수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쓸모에 따라 이용하고 죽이려고 하지만 록키와 티파니만은 나를 간절히 바라봐준다. 그렇기에 나는 둘을 지키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엿본 느낌이었다. 나조차 설령 비극일지라도 그것을 지키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떤 단어로도 쉬이 정의되지 않는 세 명의 관계지만, 이로 인해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는 마음을 더욱 절절히 느낄 수 있었던 영화 갤버스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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