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드런 액트

당신은 어떻게 보고 있나요?

by 서영

피오나 메이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유능한 판사이다. 어마어마한 워커홀릭이라 남편 잭이 제안하는 주말 부부동반 테니스 시합에도 참석할 수 없다. 이러한 아내의 무관심에 잭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폭탄선언을 던진다.

이러다 다른 여자의 유혹에 넘어갈 거 같아!

남편이 미리 던진 바람 선언(?)에 분노 섞인 반응을 내지르는 피오나지만, 갑작스레 걸려온 급한 재판 요청 전화를 침착하게 받아 재판 개정일을 정한다. 어쩔 수 없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의 끝자락에 놓인 곧 청년이 될 소년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


그는 백혈병에 걸려 치료과정에서 수혈을 해야 했으나 부모를 따라 '여호와의 증인'의 독실한 신자로 교단의 가르침에 따라 피를 수혈받기를 거부하며 성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려 하였다. 이를 지켜볼 수 없던 병원이 소송을 제기하여 급히 재판을 열게 되었고, 양측의 의견을 들은 피오나는 직접 병원에 가서 환자 본인의 의견을 듣기로 한다. 유별나다는 기자들의 수군거림 속에 병원으로 향한 피오나는 무균실 안에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애덤을 만난다. 놀라움에 커진 눈으로 피오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애덤에게 배우기 시작하는 기타 연주를 부탁하다 그의 음률에 따라 예이츠의 시를 옮긴 가사를 따라 부른다. 짧은 면담 시간을 뒤로하고 법정으로 돌아가 병원의 수혈을 허한다는 판결을 내린 후, 집으로 돌아갔지만 남편은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애덤은 무균실 밖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부모가 바라보는 가운데 수혈을 받는다. 찡그린 얼굴로 피가 몸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남편 잭은 이틀 만에 짐을 싸 들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피오나는 여전히 냉랭히 대하며 혼자 침실에서 잠든다. 이러한 나날에도 일상은 계속된다. 피오나는 바쁘게 옷을 갈아입고, 법정에 들어서 판결을 내리고 여전히 뒷문으로 출퇴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을 회복하여 퇴원한 애덤이 피오나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그의 기타 선율에 따라 노래 부르던 가사를 쓴 예이츠의 시를 찾아 읽어보았다는 애덤의 메시지는 피오나가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하는 법원으로 애덤이 찾아온다. 피오나에게 그동안 자기가 했던 일들을 줄줄이 읊어대는 이 청년은 무언가 간절해 보인다.


영화를 보내는 내내 피오나의 행동이 매우 합리적이다, 잘 처신했다 생각하다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보고 꽤 놀랐다. 그리고 엔딩이 올라가는데, 이게 끝이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원작 작가와 감독은 영화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말로 표현하기가 참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영화를 보려 하는 관객에게 선입견을 심어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회색 도시 런던에서 판사로 살아가는 피오나의 일상은 규칙적이다. 판사로서 이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삶을 영화는 조용히 보여주기만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나 마음속에는 냉전 중인 남편이 아주 떠나버릴까 초조하다. 심지어 재판 직전까지도 텍스트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한다. 하지만 피오나는 그 순간에도 아주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판사실에 앉아 있다. 애덤은 자신의 힘듦과 감정을 노련히 숨기는 피오나에게 감정을 드러내라 요구하는 기폭제이다. 기존 판례대로 그냥 수혈하라 판결을 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자신의 병실까지 와서 왜 나를 보고 갔냐는 애덤의 말에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아닌 다른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지 않았을까?


영화 제목인 칠드런 액트는 애덤을 위한 피오나의 판결문 안에서 들리는 단어이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적으로 강제하는 행위. 남편 잭이 애덤에 대해 물었을 때, 단호히 'lovely boy'라 외치는 피오나에게서 애덤이 어떠한 의미였는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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