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어떻게 말해져야 하나?
"걔 너 사랑하는 거 아냐. 네가 좋으면 그렇게 했겠어."
산책을 하며 최근 고민을 얘기하던 지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줄곧 재잘대던 소리가 뚝 끊기고 침묵으로 잠기었다. 지나가듯 툭 던진 나의 한 마디가 상대의 정곡을 찌른 듯하다. 어려서부터 줄곧 들어왔던 '넌 왜 이리 눈치가 없니'라는 타박의 함성이 머리를 울렸다. 진실을 가려내어 직접적으로 말하는 나의 화법은 항상 사람들에게 환영받기 어렵다. 혹시 상처 받을까 한 발 앞서 진실을 알려주려던 내 나름의 말들을 참다 참다 내지른 오래전 누군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내면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런 말보다는 내가 안심이 되는 말을 해줘야 하지 않아?!"
진실을 가려내어 밝혀라. 나의 무의식 가장 기저에 깔린 원칙에 따라 사고하여 결론을 도출하여 가감 없이 말하는 화법은 상당한 공격성을 띄어 무서움과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어주었으나 견고한 철벽이 되기도 했다. 세상과 소통하고 누구보다 간절히 소통이 잘 되는 이 세상에서의 the one을 찾아 헤매었으나 항상 나홀로 되어 내 방구석에 누워 사색(이라 쓰고 몽상이라 해석한다.)을 하며 구겨진 자존감의 주름을 폈다. 책을 읽어도 지식은 생겼으나 나의 외로움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 한참을 고민하며 자존감을 구겼다가 펴기를 반복하며 20대를 보내었다.
약속 없이 한가한 주말 오후의 티브이에서 재방송되던 드라마를 우연히 보다 폭 빠졌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더운 여름 햇살과 잘 어울리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였다.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리는 초능력 소년과 속물 마인드의 국선 변호사의 이야기로 스릴러와 로맨스가 기본으로 매회 에피소드에서 국선 변호사의 사건을 통해 시청자에게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만한 화제를 보여주였다. 깊고 심오한 주제가 씨줄 날줄처럼 얽혀 보여졌지만, 내가 가장 의문을 갖고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아주 사소했다. 의뢰인이 쓰레기 오물을 여주인공에게 투척하자 몸 날려 이를 막아주던 남주인공이 어디에 부딪쳐 손목이 붓자 여주인공이 의뢰인에게 고소하겠다고 큰 소리로 다다다 쏘아붙였다. 그러나 남주인공은 의뢰인의 딱한 사정을 알고 여주인공을 말리면서 되려 언성을 높였고, 이로 인해 화가 나서 뒤돌아 걸어가는 여주인공을 쫓아가 붙잡고 바로 미안하다 말하는 남주인공, 그의 사과가 나의 논리회로에서 오류로 잡혔다.
저 상황에서는 과하게 화를 낸 여주인공이 잘못했는데, 왜 남주인공이 바로 가서 미안하다 하지?
몇 컷만에 지나간 이 상황이 나는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답은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보였다.
맛집 탐방을 즐겨하던 이들이 자주 가던 펍에서 간단히 술을 한 잔 하게 되었는데, 평소 그들이 시키던 메뉴와 동떨어진 것을 내가 주문하자 그들의 품평이 시작되었다. 가격이 어쩌고 양이 어쩌고 이야기를 하다 내 메뉴를 가져오는 서버에게 양 대비 가격이 너무 비싸네 어쩌네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그를 말리자 고객의 피드백을 전달해줘야 가게가 알고 개선하지 않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바로 아주 실례되는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되었을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얘기를 듣는 서버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그의 피드백은 단골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으나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꺼내야 하는 의견이었다. 드라마의 남주인공은 알았던 것이다. 아마 여주인공 자신이 오물을 뒤집어썼다면 '오늘 재수가 없네' 한 마디 투덜대고 넘겼을 테지만, 자신이 다쳤기에 여주인공이 과하게 화를 낸 거란 걸. 그런 여주인공이 원한 건 최소한 되려 자신에게 언성을 높이고 잘못을 지적하는 남주인공의 말은 아니였으리라.
진실을 이야기하는 건 나쁘지 않다. 다만, 우리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인간이기에 상호 간에 논리적 인과관계만을 따져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하였다. 그동안의 나는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우선 정답을 찾아 상대에게 내뱉은 것이 아닌가 라는 반성과 상대를 헤아려 말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진실을 가려내어 마주하고자 하는 나다움은 여전하지만, 이를 어떻게 표현해 할지 고민하며 오늘도 메신저에 글을 쓰기 전에 곰곰이 단어를 고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