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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Oct 03. 2020

나는 왜 쓰냐면

스스로의 욕망에 솔직해지기

소년은 수족관에 매우 가고 싶어 했다. 가만히 있어도 항상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의 세계는 너무 시끄러웠기에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물속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여 수족관에 많이 가고 싶었다. 이 소년을 많이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인 나는 비록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소년이 바라던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다. 칼바람이 휭휭 부는 카프리 섬의 Vila Jovis에서 우연찮게 소년이 원하던 청각이 차단되는 순간을 맞이할 때 드디어 알게 되었다. 세상의 시끄러움과 차단되어 나의 소리만이 들리기에 내 안의 침잔되어 있던 사유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내 안의 감각이 극대화되어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사유들이 둥둥 떠올라 내면을 가득 채우는 세계로의 초대. 드라마 속 소년 박수하(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는 나에게 내 안의 소리를 좀 더 잘 들어보라고 알려주었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제목인 '나는 왜 쓰는가'를 보는 순간부터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죽하면 글 쓰겠노라 마음을 먹으며 브런치에 올린 첫 글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였으며 따로 폴더를 분리하여 만들어 글을 발행할 정도로 글을 쓰는 이유에 매우 집착했다. 물론 나는 스스로가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엄청 거창한 이유가 있을 리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성의 활동과 연계된 글쓰기의 근원적 이유를 탐색하면서 느낀 점은 참으로 나라는 사람은 지적 허영심의 거품이 몽실몽실 피어나 내면의 욕조를 넘어 사고의 천장을 뒤덮고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거품에 현혹되어 온갖 멋있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갖다 붙이고 있었다.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글을 쓰자, 금방 휘발되지 않는 글을 쓰자, 수상을 할 수 있는 글을 쓰자, 사람들에게 팔리는 글을 쓰자, 나는 잘 쓰니까!


글을 쓰면 쓸 수록 점점 패턴화 되어가는 글쓰기의 매너리즘을 벗어나기 위해 독립 서점에서 여는 단편 소설 글쓰기 클래스에 참가하다 '합평'이라는  문화를 알게 되었다. 우연히 괜찮은 '합평'모임에 들어가게 되었고, 구성원들이 올리는 글에 주눅이 들면서 한동안 먹고사는 일에 집중했다. 드물지만 내 글을 올렸다가 정곡을 찌르는 비평의 칼날에 난도질당하기도 했으며, 그들이 올리는 글과 나의 글을 비교하면서 내가 글을 쓸 수나 있을까 했다. 구성원들은 글의 합평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로도 대화를 나누었다. 최근에 읽은 책이나 소장하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점점 이들이 얘기하는 책이 무엇인지 물음표만 생겼다. 이들이 얘기하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작품을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왜 같잖게 이들과 함께 있나, 글을 쓸 자격이 있나 라는 자격지심은 날이 갈수록 쌓여갔고, 이 모임에 계속 있어도 될까 매달 돌아오는 글 마감일마다 고민이 되었다. 덕분에 부풀대로 부풀어 올랐던 허영심의 거품은 오래전에 꺼져버렸다.


동네 근처에 새로이 오픈한 독립 책방을 발견하여 신나게 책을 구경하다 충동적으로 한 권을 구매하였다. 이 책방 너무 좋다며 희희낙락 새 책을 들고 나와 그날 구성원 중 한 분에게 자랑을 하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의 소장도서는 대부분 인문서적이었다. 소설은 누군가의 추천으로 샀는데 기억도 안 나며, 대부분 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나 학자들이 쓴 저서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문득 조지 오웰이 에세이에 적은 글쓰기의 목적이 떠오르며 자신은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쓰다는 이유가 떠올랐다. 유일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의 이유가 나의 이유임을 느꼈다. 나는 타인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도 설명이 많고 내 주장이 강하다. 매우 오만하게도 나는 이래서 글을 쓰고 싶었다. 당신은 철학자인가요 묻는 사회자에게 정치 사상가라 불리고 싶다는 한나 아렌트의 대답이 이해되었다. 나도 남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이가 되고 싶다. 


이로서 나는 글쓰기로 표출된 내면 깊숙이 잠자고 있던 진실된 욕망을 인정하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단지 어느 개인의 글쓰기 방황기로만 보일 아주 작은 점의 하나이지만, 개인으로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조금이나 받아들이려는 성장이다. 나의 생각이 강해서 타인의 생각을 쉬이 받아들이지 않는 내가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없는 내 안의 욕망에 가장 충실한 답변을 찾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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