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렇다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한국의 대명절 중 하나인 설날을 맞이하게 됐다. 명절. 어렸을 적 명절과 지금 어른이 되어서 느끼는 명절란 의미는 너무나도 차원이 다르다. 환경부터 다르고 참여 구성원도, 중요도 등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했을 때도 모두 다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기도, 그때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지금은 납득이 되는 형태의 명절 속 모습들과 '나'라는 사람이 느끼는 명절의 의미. 문득 2025 설날을 혼자 맞이하다가 떠오른 생각이다.
어렸을 적 명절을 떠올리자면,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자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날이었다. 두근거린다는 것이 설렌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론 불안감과 불편함 등을 마주하게 될 상황에 대한 두근거림이기도 했다. 왜일까. 세뱃돈을 받는다는 것과 온 가족이 모여서 맛있는 식사를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것, 방학이라는 학생에게 휴가라는 존재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공부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떠나 안정감 있는 울타리 안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그래서 설렜던 거 같다.
한편으로 불편했던 건, 어른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불편함. 착한 손자가 되기 위한, 공부 잘하고 학교생활 잘하는 미래가 어떨지 기대되는 그런 손자라는 기대감을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기대치를 맞추고 있었다. 가끔은 불편한 어른들의 말씀들을 마주하기도 하고,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 놀이가 흥미가 떨어졌을 때 오는 지루함이 더해져 아늑한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조상님들께 인사하러 가는 것도 쉽지 않은 길이기에 추울 때(설날) 더울 때(추석) 오르락내리락하는 등산(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산을 올라야 한다는 것)은 번거롭고 귀찮을 뿐이었다. 그런 추억이 아직도 생생했고 웃고 울고 싸우고 정겹게 놀기도 하는 정말 가족다운 명절이었다.
사촌들과 우리가 무럭무럭 성장하는 만큼 어른들의 삶에도 무언가가 커가고 있었다. 가족의 인생 속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누군가는 새로운 가족으로 합류하거나, 누군가는 곁을 떠나기도 하는 인생사를 함께 걸어오며 점점 바뀌는 명절의 모습. 어른으로서 경험하는 명절은 그렇게 그때 그 시절과 달라져 있었다.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외식하는 날이 되었다. 함께 밥을 먹는 것, 함께 모여 조부모님을 뵙는 것에 의미와 목적을 두고 모이는 '모임'이 되었다. 명절이 단순한 모임이 되어가는, 그렇다고 그것이 틀렸다고 맞았다고 정할 수는 없다. 다만 달라졌을 뿐이다. 달라진 지금의 명절이 어떤 면에서는 몸도 마음도 편하지만, 때때로는 그때 그 시절 마당에서 장작불도 피웠었는데, 새끼 강아지랑도 놀았었는데, 뒷산에서 도자기 조각도 발견했는데 등등의 추억을 꺼내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때와 다른 건 무엇일까. 수많은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붙잡고 싶은 것들이 남아 현재의 모습이 되었겠지. 그 변화를 이번 설날에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된 건 온전히 명절 당일에 혼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했는데, 서운함이나 아쉬움보다는 편안했다. 자연스레 그래서 명절이 과연 뭘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설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거 같다. 진지하게 설날은 무엇일까에서 명절이란 존재는 무엇일까. 만약에 명절, 전통적인 휴일이 없다면, 기념할 수 있는 날들이 없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는데 이상하다. 매우 삭막함과 동시에 개성이 톡톡 튀는 세상이 상상된다. 삭막하다고 여긴 건 사회 전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이 존재하지 않게 되니까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사람과 사람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 영향을 줄 거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해 보면 사회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까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사회적으로 함께하는 기념일이 없다면 단합, 협동, 단체생활 등 이런 공공적인 영역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사회라는 존재와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명절의 의미였다.
그래서 명절이란, 공동의 약속 속에서 쌓을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전통적인 의미로는 아니지만 역할, 목적이라면 명절의 의미는 이러하지 않을까. 명절의 의미는 언젠가 또 나의 삶이 변화하며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명절은 반갑고 두근거린다는 건 여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