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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속도

천천히, 그리고 성실하게

by 미앞

나만의 속도에 대해 주기적으로 생각해 보곤 한다. 나는 과연 어떤 페이스로 삶을 걸어가고 있는가. 방향도 중요하지만 목적지를 향한 페이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방향은 항상 방황하지만 그럼에도 나만의 속도는 맞춰 가려고 노력한다. 나만의 속도는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떠오른 기억들이 있어 적어본다.


나만의 속도라고 하면 달리기 할 때와 트레킹 할 때가 떠오르는데 그중 히말라야 ABC 트레킹의 기록을 더듬어 봤다. 트레킹의 '트'도 모르는 초보자인 나에게 히말라야 ABC 트레킹은 어쩌면 큰 도전이었다. 사실 생각보다 쉽게 여기고 겁 없이 시도한 점이 크다. 가끔 나에게서 나오는 근본 없는 추진력이라고 할까.


막상 트레킹 일정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 발등에 불 떨어지듯 준비는 해야겠다 싶어 러닝도 열심히 해보고 주변 등산도 (딱 2번) 올라가며 훈련 비슷한 걸 해봤다. 급하게 챙긴 훈련(?) 과정 중에 과연 내가 4천 미터가 넘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체력이 될지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 상태에서 그렇게 트레킹을 시작했다. 첫날엔 1천 미터 정도 고도가 확 올라가는 길이라 무한계단지옥이 펼쳐졌다. 자신감 있게 시작하면서 발 빠른 동행자들을 따라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렇게 30분가량 쉼 없이 속도를 냈더니 이것이 나의 페이스가 아닌걸 심박수를 보고 깨달았다. 가방은 무거웠으며, 트레킹 직전에 먹은 음식은 얹힌 거 같은 더부룩함과 시뻘게진 얼굴을 느끼며 '이거 큰일이다, 이러다가는 못 올라간다'라는 생각에 겁이 났다. 그때 동행한 현지 가이드 T(나의 네팔아버지가 되신 분)가 나의 상태를 틈틈이 살폈다. 잠시 가방을 놓고 쉴 때 내 가방을 들어보더니 깜짝 놀라며 짐을 더 빼라고 조언했다. 이것저것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 욕심내서 챙긴 물건들이 불필요한 짐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가이드 T는 나에게 "천천히"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천천히


처음엔 흘러들었던 말이었는데, 점점 그 말이 단순히 속도를 줄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속도를 찾아가라는 의미인 걸 깨달았다. 천천히 나의 속도를 찾아 올라갈 수 있도록 되새겨준 가이드 T. 그렇게 가이드 T와 함께 나와 비슷한 페이스의 동행자들과 '천천히'를 서로 외치며, 차분히 걸었고 쉼도 틈틈이 주며 안전하게 올라갔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로 "천천히 갑시다"라는 다짐과 함께 내 페이스를 찾아가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며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130m에 도착했다.


이때 나의 여행 노트 초반 적힌 글들은 이렇다.


"천천히 페이스를 맞춰야 해"

"내 페이스를 맞춰서 가야 해, 욕심도 경쟁도 필요 없어"

"결국 목적지는 한 곳이야. 거기만 올라가면 되는 거니까.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페이스에 맞춰 올라가자"


돌이켜보면 트레킹 한 5일간 내가 가장 반복해서 내뱉은 말은 "천천히"였다. 옆에 함께 걸어 올라가는 분들에게도 천천히 가도 된다는 말을 하며 가이드 T와 R과 함께 동행자들과 이야기하며 걸었다. 천천히 걷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나마스떼" 인사를 하며 스몰토크도 할 수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속도대로 걷다 보니 머릿속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하게 대단한 생각을 떠올린 건 아니지만,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가끔은 뜬금없는 추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머릿속을 한 번 맑게 청소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정화되는 기분이다.


나의 속도는 그렇게 나에게 안전감을 주었으며,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게 도왔으며, 더 많은 경험과 만남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트레킹 전후로 꾸준히 해오는 건 달리기이다. 마라톤 대회에 참여해 기록을 내는 것을 목표하기도 하고,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러닝을 한다. 달리기에 대한 책 중에 마케터이자 러너의 삶을 살고 있는 작가의 글을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무튼, 달리기>에서 스크랩했던 여럿 문장 중에서 '페이스'에 관련한 글이 인상 깊었다.


이처럼 마이 페이스로 달린다는 건 편안하게 휘파람 부르며 뛰는 일이 아니다. 튀어 나가려는 본성의 고삐를 힘껏 쥐고 지금의 속도를 안간힘 쓰며 유지하는 기술이다.

... 삶에도 사람마다의 페이스가 존재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를 수도 혹은 느릴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우리는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맞는 최적의 페이스, 다시 말해 가장 나다운 삶의 속도와 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 그 페이스로 각자의 크고 작은 목표에 닿기 위해 하루하루 힘겨운 레이스를 이어간다.

<아무튼, 달라기> 중에서


나의 페이스로 달린다는 것은 욕심과 끈기를 담담히 균형에 맞춰 달려가는 뜻이다. 너무 빠르게 달려서 금방이라도 체력이 퍼지지 않도록, 그렇다고 너무 느리게 달려서 목표치까지 걸리는 체력을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않도록 나의 정도에 맞춰서 달리는 것. 그것은 몸과 정신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순간순간을 노력해야 한다.


나의 속도를 통해 지혜와 여유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삶의 원동력을 찾게 되기도 한다. 순간마다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나의 페이스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페이스를 유지하며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한 요소는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목표가 정해졌다면 나의 속도로 습관을 들여 성실히 목표 달성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속도를 챙기는 것만큼 꾸준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꾸준한 성실함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에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 만드는 것. 하루에 밥을 안 챙겨 먹으면 힘이 없듯이 습관 하나 빼먹으면 하루가 완성되지 않는 기분을 만들어야 한다. 습관을 만들어야 할 때에도 페이스를 찾는 것처럼 나만의 맞춤형 자세가 필요하다. 충실히 해내야 하기 때문에 크나큰 욕심이 아닌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부터 시작하자. 처음부터 너무 멀리, 너무 큰 것만 바라보다가는 정작 지금 이 순간을 놓쳐버릴 수 있다. 그 어떤 일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절대 욕심부리지 말자. 하루에 한 걸음씩,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사는 마법> 중에서


이재은 아나운서의 에세이에서 읽은 내용 일부이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사는 작가의 생활을 엿보며 그 성실함과 끈기,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똑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생활과 비교해 보고 반성하게 된다. 물론 그녀를 무작정 따라서 습관을 만든다고 하면 그건 욕심이지만, 조금씩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면서 목표한 바에 가까워져야겠다는 동기부여를 가지게 되었다. 나만의 속도를 가지고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습관을 만드는 것.


나의 속도에 대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반성하게 된다. 욕심을 부려서 급발진한 경험과 그렇게 결과는 흐지부지 끝난 일들. 급한 성격 탓에 금방 식어버린 열정을 아쉬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습관화하며 나만의 페이스로 해온 것을 되짚어봤다. 그중에 하나가 글쓰기였다. 어떻게든 방법은 달라도 때로는 성격이 달라도 나의 일상과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 또한 나만의 속도에 맞춰 차곡차곡 쌓아가는 삶의 일부이지 않을까 싶다. 욕심내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글을 쓰자는 다짐을 하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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