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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랑 Nov 17. 2019

#11_모르모트1

알레르기 피부 검사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아토피나 각종 알러지 환자를 대상으로 어떤 음식이나 외부 물질으로 인해 몸이 반응하는지 체크하는 검사입니다. 


상의를 벗고 등에 바둑판처럼 위치를 지정한 후, 알러지 반응 물질을 바른 주사 바늘로 맨살에 생채기를 내어 부풀거나 이상반응을 나타내는 정도를 측정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어떤 음식이나 물질로 인하여 알러지, 아토피가 생기는 지 알아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는 돼지고기를 먹지마, 우유도 안돼, 닭고기는 괜찮아, 계란은 될 수 있으면 피해. 이런 말을 듣는 것이지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검사를 수없이 받았답니다. 


찾아가는 병원마다 처음 왔으니 해야된다며, 다른 병원에서 한 것은 의미가 없다며, 인정할 수 없다며 꼬박 꼬박 다시 검사를 했지요. 


옷을 벗고 맨살에 수십번 상처를 낸 다음, 한시간 후 다시 반복합니다. 이 과정을 네번, 다섯번을 해야 했어요.


하루 종일 그 짓거리를 견디다 보면 그저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수십개의 상처 틈으로 파고든 각종 알러지 물질 시약은 너무나 가렵고 따가웠지만 검사가 잘못될 수도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지요. 


여섯 살 때, 처음 이 검사를 세브란스 병원에서 받은 것을 기억합니다.


저 말고도 다른 수많은 아이들이 같은 검사를 받고 있었지요. 


아프다며 울부짖는 아이들, 가려운 곳을 긁는 아이에게 매를 때리는 엄마들, 아이들을 달래는 부모들로 병원 복도는 마치 전쟁 중의 병원과 같았습니다. 


채혈 용기 네 개를 가득 채워 피를 뽑고 오후 내내 등에 상처를 내며 검사를 받느라 피곤하고 어지럽고.. 하늘이 노랗다는 표현을 그 때 처음 느꼈어요. 


이 때 먹지말라고, 내게 아토피를 유발한다고 했던 것들은 계란, 밀가루, 돼지고기 따위 였습니다. 


문제는 가는 병원마다 결과가 달랐다는 것이지요. 


여기서는 닭고기가 안돼 돼지고기는 괜찮아, 저기서는 닭고기는 괜찮은데 계랸이 안좋아, 또 다른곳은 다 안돼 그리고 생선을 많이 먹어, 또 다른 곳은 등푸른생선은 절대로 먹지마.


사실 생각해보면 쇠고기라고 해도 한우인지, 호주산인지, 미국산인지, 사료를 먹여 키웠는지, 풀을 먹였는지, 축사에 가뒀는지, 방목해서 키웠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한정된 조건의 검사로 사람이 접촉하는 모든 물질과 변수를 걸러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알러지 검사는 제가 경험한 수많은 생체실험 중 하나였습니다.


의사들은 이런 환자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수십년 간 경험한 바로는 그저 굴러다니는 돈덩어리나 임상시험용 모르모트 쯤으로 보이나봐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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