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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랑 Nov 29. 2019

#20_전쟁

어릴 때부터 전쟁을 좋아했다. 


전쟁사를 좋아했다. 


다양한 역사서나 역사를 매개로 한 픽션들을 즐겨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전쟁과 관련된 내용에 빠져들었다.


영웅적인 서사시나 어느 민족의 부흥과 같은 빤한 이야기에 흥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


내가 주로 마음을 빼앗긴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과 같은 것들이다. 


사건, 상황, 그리고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기분을 비슷하게 겪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탱크와 각종 차량으로 무장한 독일군, 제트기와 탱크를 동원해 38선을 넘어온 북한군, 피리와 꽹과리를 치며 인해전술로 공포를 일으킨 중공군. 


규모를 알 수 없는, 그 해악을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침탈하러 오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공포.



아토피를 앓는 것은 끝나지 않는 전쟁을 계속하는 것과 같다. 


내일은 어느 지역, 아니 어느 신체 부위가 뒤집어 질 지 모른다. 


알 수 없는 것들의 공격으로 피부를 뜯어내고 싶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될 때면, 이 혼란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더 심해질지 다른 곳으로 옮겨갈지 상처가 덧날지 오만가지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을 때면 스테로이드 연고를 쓴다. 마치 대규모 폭격기로 융단폭격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미군의 공습에도 정글과 지하게 숨어있다가 다시 쏟아져나오는 베트남군처럼, 잠시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시 나의 피부는 아토피로 엉망이 되곤 한다. 


상처가 많아지고 더 깊어질 때면 소련과 연합군을 모두 상대하는 독일처럼 나의 몸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아무리 잠을 자도, 아무리 먹어도 소비하는 에너지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요즘 증상이 많이 악화된 것을 느낀다. 


1.4후퇴 후 서울을 다시 빼앗기고 밀려 내려가는 한국군의 느낌이다. 


끝없는 침탈과 파괴, 후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렵다. 



이 전쟁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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