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건강이 온전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한다.
어릴 때부터 총명한 편이었다. 반에서 1등을 하는 것, 이런저런 상을 타는 것이 익숙했다.
중학교 때부터 한계가 왔다. 신체적 악조건 속에서 억지로 밀어붙이는 공부는 한계를 드러내었고 시험을 볼 때마다 점수는 점점 미끄러져내려갔다. 목적지에 도착한 항공기가 착륙을 위해 서서히 하강하듯.
고등학생 때부터는 성적과 쌓아온 위치가 무너지는 내 자신에 절망하며 공부를 집어던졌다. 미국드라마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어릴 때 친하게 어울리던 친구들이 기억난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그 아이들도 공부를 곧잘 하는 애들이었다.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그 친구들의 마지막 소식은 연세대 의대를 갔다거나 이화여대 불문과를 갔다는 것이다.
다카르 랠리에서, 황무지나 한복판에서 차가 고장나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차량과 레이싱 팀은 무심하게 그들을 지나친다. 때론 그 상황에 절망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절규하는 드라이버도 있다.
끝없이 펼쳐진 레이스에서 나의 차는 고장나 뚜껑이 열린 채로 길가에 방치되어 있고, 나는 스쳐가는 수많은 차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