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 서울대병원을 다닐 때였다.
별다른 치료법도 효과가 있을만한 약도 주지 못하는, 그렇다고 입에 발린 말도 할 줄 모르는 의사에게 철없이 했던 질문이 있다.
그래서 낫는다는 걸 선생님이 약속할 수 있나요?
반복작업을 하는 단순노동자와 같이 비슷한 처방과 비슷한 약을 던져주는 의사에게 나는 어떠한 신뢰나 믿음을 느낄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에 물어본 질문이었다.
지금은 안다. 의사라는 책임을 진 사람이 함부로 약속이나 책임 따위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그때 요구했던 것은 법적인 굴레가 씌워진 상호간 의사의 합치 따위가 아니라 일말의 위안이었다.
백발이 성성하여 나이가 지긋한 교수는 내가 한 질문이 말도 안된다는 듯 그걸 약속할 순 없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사실 지금 효과가 있을만한 약은 없다고, 하지만 이거라도 해볼 수 밖에 없지 않냐고, 힘들겠지만 한번 해보자고. 나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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