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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랑 Dec 10. 2019

#25_여행

얼마 전 친구들과 만난 자리, 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통영이니 속초니 여수니.. 흔히 떠올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곳들이 튀어나왔다. 


음.. 그래.. 1박 2일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여행 가면 좋지. 맛있는 것도 먹고..


가볍게 나온 얘기지만 어느새 숙소와 날짜까지 정하고 있었다. 


뭐? 2박 3일? 게스트 하우스? 아.. 난 조금 그런데..



매일 샤워를 해야 하고 옷도 자주 갈아입어야 하는데, 잠자리는 꼭 청결해야 하는데, 세제나 화학물질이 맨몸에 닿으면 안되는데, 상처를 감싸고 피부에 크림을 바를 수 있도록 잠시나마 나만이 쓸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한데. 로션과 크림, 약을 챙겨야 하는데. 매일 갈아입는 옷가지들도 따로 챙겨야 하는데. 빨래를 따로 담을 주머니도 챙겨야겠다. 가기 전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조금 쓸까. 그러면 뒤집어질 일은 없겠지? 가방은 뭘 들고가야 되지? 캐리어 끌어야 하나.. 너무 무거운데. 여행은 짐이 적을수록 편하단 말이다.. 로션이랑 크림은 따뜻한데 보관하면 변하는데 가방에 그냥 넣어가면 되려나? 약은 미리 약통에 소분해서 먹기좋게 나눠놓아야지. 아참 수건은 몇장 챙겨가야되지? 숙소에 깨끗한 수건 있는곳도 드물었어. 화장실은 깨끗하려나? 샤워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비누만 가져가면 될까? 샴푸랑 클렌져도 챙겨가야되나? 그러면 짐이 너무 많아지는데. 어떡하지. 뭐? 차를 안 쓴다고? 하루종일 걸어다니는거 아니야? 겁나 피곤할것같다.. 너무 피곤해도 피부가 불안정해지는데.. 더우면 어떡하지. 땀나면 자주 씻어야되는데. 그럼 로션은 덜어가는게 아니라 통째로 들고가야겠다. 



여행을 얘기하는 15분 남짓의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여행은 데리고 갈 것들이 너무 많다. 자잘한 물건들을 챙기는 것보다 이런 걱정거리를 바리바리 이고 지고 가다보니 여행을 즐기기는 커녕 계획할 때부터 지쳐버린다.


여행을 함께하자던 친구들은 몇 안되는 나의 소중한,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친구들이지만, 나의 걱정과 불편함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나랑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뭐.


사소한 것들에, 먹는 것에, 잠자리에 이렇게 까탈스러운 나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친구들도 나랑 같이 하는 여행이 힘들거야. 


그냥 거기는 나중에 나 혼자 가야겠다.


얘들아 미안한데 나는 그때 시간이 좀 애매하네. 일단 너네끼리 시간 맞춰봐. 나는 시간 좀 조정해 볼게. 


(아마 안될거야.)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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