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아무나 하나
2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회사 밖에 몰랐던 사람이
창업을 하고 투잡이란 것을 하게 되면서
마흔여섯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 하게 된 생각들을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합니다
몹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에,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지금의 떨림과 설렘과 두려움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월급쟁이가 천직이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주변인들에 비해 조직 생활도 꽤 잘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매니저들과 잘 맞았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와 맞지 않는 매니저들과도 나는 잘 맞출 수 있고 그들과의 조율 작업을 그리 어렵지 않게 해 낸다고 자신했다.
역시 단언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40대가 지나 나도 꼰대가 되어선지, 도무지 맞추지를 못 하겠는 순간이 도래했다. 위만 문제가 아니라 좌우, 아래가 다 하나같이 제발 좀 지들이 나한테 좀 맞추지, 내가 맞추기만을 기다리는 상황 같았다. 사람에게 치이니 일이 잘 될 리 없었다. 집중할라 치면 인물들의 얼굴이 머리 속을 동동거렸다. 이 일을 저 사람한테 말하면 또 뭐라고 딴지를 걸까, 저 회의에서 어떻게 발표하면 까이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까.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되어 본질과 상관없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리 속을 꽉 채우며 좀처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조직에서 벼랑 끝에 놓인 것 같았을 때 어느새 내게도 사업이라는 단어가 또아리를 틀었다.
회사와 나의 관계가 한 쪽은 헤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한 쪽은 아직 아니라고 믿는 연인 관계, 즉 회사는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태, 더 나은 연인을 찾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별 통보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는 그런 상황에 빗대니 기가 막히게 싱크로가 맞았다.
내 연인은 절대 자기가 먼저 헤어지자고 악역 맡기는 싫어하는 우유부단의 결정체이고, 이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 불행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 판단하기 전에 그런 연인과의 관계를 지속해야 하냐는 자문을 하게 된 이상 이 관계는 건강하지 않은 것. 관계 회복을 하거나, 이별에 대비하거나, 선수를 치거나 셋 중 하나인데, 아마도 예전 같으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겠지만 성공률이 안 높으니 첫번째 카드는 아웃. 이별을 기정사실화 하고 철저히 대비하거나 선수를 쳐 버리는 것 중 두 개의 카드가 남았다.
언젠가는 할 이별이기에 남은 카드 두개는 시간차만 있지 실상 같은 카드다. 그렇다면 바로 헤어지든, 조금 나중에 헤어지든 이별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걸까?
사업은 그렇게 내게 왔다. IMF 때 부도난 아버지 사업 때문에 집에서 사업이란 말은 금기어 이다시피 했고, 내 사업을 한다는 건 월급쟁이 20년 동안 하루 이상 생각 해 본 적 없는 남의 것이었다. 치킨집과 파리바게뜨가 단숨에 떠오르는 퇴직자들의 그런 것 아니면 매 순간 아이디어를 주체할 수 없는 스타텁 창업자들의 그런 것.
하지만 한 편으론, 영어 공부하려고 들었던 how i built this 같은 팟캐스트에서 유수의 창업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이들 우연한 기회와 작은 목적으로 시작하니 사업이 별 것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평생 소비자로만 살던 내게 판매자라는 상이 맺혔고, 한번 'why not'을 외치고 나자 그 생각에는 엄청난 추진력이 붙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