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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으로만 Dec 22. 2020

그렇게 사업이 내게로 왔다 (2)

설레임, 너 오랜만이다

2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회사 밖에 몰랐던 사람이
창업을 하고 투잡이란 것을 하게 되면서
마흔여섯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 하게 된 생각들을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합니다

몹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에,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지금의 떨림과 설렘과 두려움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사 생활이 애매해지자 마자 바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먹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철이 없는 나는 돈 되는 것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회사에서의 하루하루가 지옥같으니 좀 살자는 마음에 남 좋은 일 말고 나 좋은 일 할 생각이 들었다고 생각하면 일순 내 자신이 측은해지기도 하지만, 이제 변변한 벌이가 없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좋아하는 걸 찾고 있으니 철없음은 숨길 길이 없다.


많은 지침서에 나오듯, 돈이 한 백억쯤 있다 치고, 즉 먹고 살 걱정 없다면 뭘 하는 게 내 행복감을 가장 높여주냐 하는 질문에 답을 해 보았다.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책 보는 것, 옷 쇼핑, 그릇 쇼핑 하는 것, 청량한 날씨에 조깅하는 것, 맛있는 것 먹(으러 가)는 것, 잘 차려 입고 결혼식 같은 데 가는 것 등 하나같이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만 나열됐다. 스스로에게 최대한 솔직한 대답이었지만 적어 내려가면서도 한심해서 한숨이 나왔다. 


그나마 음악 틀어놓고 책 보기를 좋았던 영화나 음악, 쇼핑한 상품에 대한 글 쓰기로 바꾸니 좀 나아보여 10년 넘게 방치했던 블로그를 다시 열고 글을 좀 썼다. 한 자리수였던 조회수가 바로 백대로 올라갔지만 거기까지. 유명 브랜드 의류, 가방, 신발 리뷰를 올리면 치솟는 조회수를 확인하며 신기해 하긴 했지만, 파워블로거가 되기에 내 쇼핑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매번 독창적이고 가치있는 리뷰를 쓸 자신도 의지도 없는 게 문제였다. 


반대로, 그 즈음 나는 스타텁 CEO 인터뷰 팟캐스트에 출연한 파타고니아 CEO의 조언("Own fewer things but real good things!")에 한참 꽂혀 쇼핑을 전반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내돈내산 리뷰어와는 컨셉이 맞지 않았다. 때 마침 부모님께 큰 돈 들어갈 일이 생겨 긴축하게 되자 나는 진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직원들끼리 인사가 "뭐 좀 샀어요?"인 회사의 1년 중 가장 큰 할인 행사를 유유히 패스할 수 있었다.


40대 중반에 내가 좋아하는 게 뭔가를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웃픈 일이지만 이 시기에 나는 온통 이 질문에 집중함으로써 나름의 답을 냈던 것 같다. 


언젠가 월급이 끊길 날은 온다>>이직도 못한다>>혈혈단신 나와야 한다>>가진 현금과 주식으론 요즘 금리에 몇 달 밖에 못 버틴다>>아무리 돈 안 벌어도 된다 쳐도 나는 24시간, 365일 놀기만 하는 건 잘 못 하겠다>>뭐라도 일을 하긴 해야 한다>>글 쓰는 걸로 돈 벌 정도로 매달리는 건 못 할 것 같다>>그럼 장사>>임대료, 인테리어 비용 같은 것 없으니 온라인. 그리고 배운 게 도둑질>>옷은 좋아는 하지만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내 취향은 너무 니치하고>>그릇 같은 거?>>20대 부터 극성떨고 핸드캐리 해 날랐던 포터리반 그릇들은 아직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외국에는 예쁜 그릇 가게 많은데 우리나라는 왜 다 포트메리온 일색이고 기껏해야 덴비, 빌보일까>>내가 한번 해 보고 싶다>>좋아하는 것 마음껏 보고 마음껏 살 수 있겠네>>장사만 잘 되면 즐기면서 할 수 있겠네!


의식의 흐름은 대략 이랬지 싶다. 


퇴근 후 그저 뭐 싸고 좋은 것 없나 애꿎은 쇼핑앱들을 섭렵했던 나날들을 뒤로 하고 이젠 내가 팔 상품들을 찾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생산적일 수가 없었다. 국내 쇼핑 사이트에서 상품을 찾고 한다 하는 전문 쇼핑몰들을 들여다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유명한 브랜드들의 공홈을 즐겨찾기 하고, 해외 전문 잡지 사이트를 찾아 깨알같은 기사들을 확대해 가며 읽었다. 이 과정에서 주옥같은 상품들을 전개하는 브랜드를 처음 만나거나, 각국에서 펼쳐지는 업계 전시회 리스트를 훑으며 훗날 바이어로 참가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글자 그대로 심쿵의 순간.


이 심쿵의 순간은 급기야 전문지에서 처음 본 미국 브랜드를 덜컥 수입까지 해 버리는 우를 범하게 만들었지만, 소량의 상품 구매 비용과 수입에 소요되는 비용, 내 시간과 노력, 그리고 팔리지 않으면 쌓일 재고 정도가 최대 리스크인 상황에서 우를 범하는 그 과정은 즐겁기 그지 없었다. 심지어, 비슷한 비용을 지불하고 얻은 옷, 신발, 가방이 주는 만족감 보다 훨씬 생산적이라는 생각에 과거의 나보다 훨씬 낫다는 묘한 우월감도 생겼다. 


내가 가지려고 좋은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해서 판매가 잘 될 상품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흥미로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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