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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으로만 May 05. 2022

겸손함에 대하여(2)

내가 인스타그램을 못 키운 이유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를 늘리기 위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함은 하루에 20~30명씩 찾아다니며 선팔했으니 맞팔해 달라는 댓글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댓글을 남기기 위해서는 먼저 내 고객이 될 법한 사람을 찾은 다음,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 사람의 피드와 맥락이 연결되는 내용으로 댓글을 작성해야 한다. 


특정 해시태그를 사용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팔로우 하고 댓글을 달면 안 된다. 우선 그 사람이 댓글에 반응을 하는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 댓글은 많이 달리는데 대댓글 한번 안(못) 다는 사람에게는 댓글을 써도 소용없다. 같은 이유로 팔로워에 비해 팔로잉 수가 현저하게 적은 경우도 피한다. 


한 두개 피드에만 그 해시태그가 달려 있고 대부분의 피드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일 수도 있으니 전체 피드 중 내가 생각하는 주제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추가로, 기본적인 내용은 복붙하더라도 반드시 조금이라도 개인화를 해 주는 게 좋다. 애써 컨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사람이라면 ‘피드가 너무 예뻐요, 맞팔 부탁해요’라는 판에 박힌 댓글보다는 내 피드 내용과 관련해서 남긴 댓글이 고마울 것은 너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작업 3일만에 잠잠했던 내 계정은 몰라보게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뜻밖의 깨달음에 봉착했다. 다름 아닌 나의 교만함, 내가 그 동안 인스타그램을 키우지 못한 건 교만했기 때문이었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꾸준히 올리자고 결심하고 지난 4개월 동안 하루 1개 이상 올리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어느 날 아이디어가 솟구쳐 몇 개씩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도저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사나흘을 허송하기도 했다. 피드 올리는 것도 급급하다 보니 내 피드에 반응해 줄 사람을 찾아나서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내가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내 컨텐츠가 좋으면 저절로 사람들이 모일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며 불통 피드를 계속했다. 


역시나, 약 백일의 시도는 실패였다. 피드는 100개쯤 올렸으나 팔로워는 고작 2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실패를 인정하고 고육지책으로 클래스101 강의를 들었다. 강의료가 상당한데 다 아는 내용이라 돈 아까울까봐 걱정했지만, 좌정하고 들어보니 역시 문제는 어설피 아는 것이었다. 아예 모른다고 생각하면 시작하기 전부터 강의를 들었을텐데.


인스타 세상에 있는 무림고수들 사이에서 나는 나를 알아봐 줄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하수다. 이걸 뼈아프게 인정하게 된 것만 해도 큰 수확이다. 특히, 팔로워 1천명까지는 손품을 팔아야 하고, 그 작업은 에너지가 매우 많이 쓰이므로 자기 전에 조금씩 해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한달 안에 다 끝낸다는 생각으로 바짝 하라는 지침은 노가다를 거부하는 내 머리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는 듯해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자기의 가치를 주장하고 남의 가치를 공감하며 이 세계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데 나는 인스타를 한다고는 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으면서 어떻게 편하게 갈 수는 없을까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 팔로워가 몇백, 몇천, 심지어 몇만인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남의 피드에 좋아요와 댓글을 남기고 소통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이번 작업 중에 알게 되었다.


SNS의 본질은 말 그대로 네트워킹, 사람 간의 교류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탁월한 컨텐츠를 가지고 일방향으로만 쏘아도 반응이 있었던 극소수의 사례가 내게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도둑놈 심보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남들에게는 가짜 겸손을 떠는 가식 속에, 속으로는 나 정도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올 거라는 엄청난 착각 속을 헤매고 있었다.


훌륭한 컨텐츠는 많고, 그걸 지속적으로 올리는 부지런한 사람들도 많은 덕분에, 이 세계에서 나는 가식 없이 진심으로 칭찬할 수 있다. 그들과 교류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진심이다. 보이는 것, 특히 있어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이 세계의 민낯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에서 열심인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깨달을 건 차고 넘친다. 자기가 갖고 있는 걸 최대한 전달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노력과 실력을 나는 리스펙 하기로 했다. 자기 효용 가치를 만들고 세상에 알려서 조금이라도 더 쓰임을 당하려는 겸손한 사람들의 몸부림을 나는 리스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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