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버린 것이 아니라 주운 것]
역사적인 날(내 생의 가장 더운 날) 책상머리에 앉아 뭉기적거리기를 포기하고, 과감히 '놀기'를 선택하고는 영화 <어느 가족>을 보기로 결심했을 땐, 어떤 상큼한 것을 기대했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나 <태풍이 지나가고>처럼 말이다.
하지만 히로카즈 감독의 이 영화 <원제 : 도둑질하는 가족>은 자신의 변신을 선언하는 매니페스토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그의 '가족'은 한가로운 또는 외딴 마을의 "아름다운, 만들어지는" 가족이었다면, <어느 가족>은 일본 '사회' 한복판에 놓인 "파괴되고, 해체되고, 위장된 가족"이다. 노동, 성문화, 도박 등 사회 현실을 민낯으로 만나게 된다. 히로카즈 특유의 상큼한 감동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아픈 감동으로 무겁게 침하한다.
밤새 쌓인 눈으로 아빠와 아들이 만들어 놓은 희망의 눈사람이 다음 날 아침 맥없이 녹아내린 추한 모습으로 길가에 버려지듯, 영화 속 인물들도 적나라한 현실에 던져져 속절없이 녹아내린 형체 불명의 정체성을 가진다.
왜 노인을 버렸냐는 형사의 추궁에 감독은 이렇게 답한다. (배우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한다.) 버린 것이 아니라 주운 것이라고. 누군가 버린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상쾌한 감동 대신 무거운 감동이었지만, 먼 훗날 누군가가 역사상 가장 더웠던 날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쉬워졌다. <어느 가족>을 보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