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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관객 1만 명을 넘기지 못할 만큼 두 말할 것 없이 "브륄리언트한 영화"(이 역설은 거의 언제나 진실이다).
46년 부부의 삶과 역사(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세심하게 직조되어 있고, 다양한 삶과 역사의 갈등들이 주인공들의 작은 눈망울과 볼의 홍조 변화 속으로 표현되는 영화.
히틀러의 등장에서 냉전시대까지 온갖 중요한 역사가 부부의 삶에 침투해 있지만 늦둥이 아이가 집에 심어놓은 배 씨는 커다란 배나무로 아랑곳없이 커나간다.
그 많은 역사적 이야기를 이 짧은 영화 속에 어떻게 욱여넣을 수 있었을까? 그 비법은 미디어의 변천이다. 편지에서 전화로,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TV로. 반복적인 지루함을 주지 않으면서 부부가 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것을 간결하게 끌어나간다.
그로 인해 영화에서 무시되는 것은 이들 부부의 외적인 인간관계다. 부부의 삶에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세상 이야기처럼 그저 외적인 요소로 빈곤해진다.
그렇기에 온갖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갈등에 인간들이 서로 엉겨 붙는 질척거림이 없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외부의 공격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며 슬쩍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갈등을 삶의 밖으로 밀어낸다.
이렇게 화사한 영화가 탄생했지만, 작가가 의도했던 안 했던 이 영화에는 섬뜩한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 부부의 삶은 오로지 편지, 전화, 신문, 라디오, TV에 의해서 조정되고 규정된 것이 아닌가? 다른 선택, 다른 출구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