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패터슨>(2016)

짐 자무쉬

by 로로
30420089_157089455130784_7472736505125864069_o.jpg


영화 <패터슨>에서 1주일 동안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주인공 패터슨이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을 가로지르며 출퇴근하는 모습이다. 짐 자무시가 아무 생각 없이 그 건물을 배경으로 삼지는 않았을 터인데 국내외 영화 평론가 누구도 그 건물의 정체를 파고들려 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의외다.


“패터슨은 19세기 이래 산업화의 중심지가 되어 공장들이 들어섰고, 직물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이들 노동자들은 주로 이태리와 아일랜드에서 이주해온 노동계급으로 이곳은 일찍부터 다문화사회를 이루었다. 이들 노동자들은 하루 13시간 일주일에 6일을 노동해야 했다. 이러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이곳은 노동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1913년 역사적으로 유명한 패터슨 견직노동자 파업이 벌어졌다. 참담하게 실패로 끝났고 많은 사람들은 그 역사를 기억에서 지웠다.”


짐 자무쉬는 영화 패터슨을 만들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늘 이렇게 패터슨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등에서 꼬박꼬박 노동계급(working class)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버스 기사를 지칭할 때도 ‘working class bus driver’라고 말했고 일상 속에서 시를 쓰는 주인공을 ‘노동계급 시인’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평하는 어떤 평론가도 ‘노동자’라는 키워드에 주목하지 않고 있는 것은 놀랍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주인공 패터슨은 매일 아침 낡은 빨간 벽돌의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지나서 버스 차고지에 도착하고 일을 끝내면 다시 그 음침한 거리를 지나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 빨간 벽돌 건물은 영화에서 지겨우리만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건물을 통해 노동자 패터슨에게 어떤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듯이. 그러나 불행이도 이 건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 건물은 미국 노동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는 패터슨견직노동자 파업이 벌어졌던 바로 그 건물이다. 패터슨이 그 건물을 끼고 걸어 다닐 때 카메라는 건물의 여러 곳을 다양한 앵글로 보여준다. 건물 벽에는 반쯤 지워진 채 ‘PATERSON SIL_ __CHANG_’가 보인다. 파업이 일어난 회사 이름 PATERSON SILK EXCHANGE의 남겨진 흔적이다. 빨간 벽돌에 귀를 기울이면 무엇인가 웅성거리고, 어떤 함성이 들리고, 어떤 단말마의 외침이 튀어나오는 듯하다.


패터슨의 역사성을 들추어내어 노동계급을 강조하고 실패한 파업 투쟁 역사의 쓰라린 흔적을 보여주면서 자무쉬는 이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토리노의 말>(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