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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5. 2020

잡문15

나는 "양극화 해소"란 말에

극도의 좌절감을 느낀다.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자면

"더 이상 벌어지지 말게"란 뜻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 정도면 되는 사회인가?

이게 미래를 설계할 대통령 후보가 겨우 할 수 있는 말인가?


어느덧 우리는 "평등사회 구현"이란 말은

추상적 구호로 조차도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동성애 문제가 나올 때

한마디 내뱉는 사람들의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문제를 

"내가 동성애를 할까말까"로 

'은연 중에'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그런 와중에 '싫어'라는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고

상식이나 논리나 이치에 맞지 않는

'동성애 반대'란 말이 만들어진다.


정말로 은연 중에 떠올려야 하는 것은

내 자녀의 성정체성이 동성애일 경우

기도원 데리고 다니며 두들겨 팰 것인지

우리 사회에서 상처와 고통 없이 자라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의 향기는

1년 전과 다름 없다.


마라톤을 뛰고 돌아오는 길가에서

고혹적인 향기를 피우며

나의 손길을 꼬드긴 유혹도 여전하다.


작은 사무실을 가득 메웠지만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만

그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후각의 길들여짐도 그대로다.


나의 몸은

나의 마음은

또 얼마나 길들여져

늘 옆에 존재하는 것에

둔감해져 있을까?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면

그게 어디 인생이랴

사육이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을 위한 테스트]


어떤 남자 사람(이름을 밝힐 수 없음) : "와!~ 여긴 왜 이렇게 여자들이 다들 이쁘지?"

나 : "네가 이쁜 여자만 골라서 쳐다보는거야."

그 남자 : "아니야. 진짜 여긴 이쁜 여자가 많아."

나 : "여기 잠깐 앉아봐. 지금부터 이 앞으로 지나가는 여자들을 빠짐없이 모두 봐. 그중 네가 이쁘다고 표현한 여자가 10명 중에 몇 명인 지 세워봐. 장담컨데 2명도 안될꺼야. 너는 네가 보고 싶은 것만 볼 뿐이야."

그 남자 : (테스트에 성실히 임한 후) "끙~~"


나는 한때 과도한 낙관주의자였다.


인간이 만든 그 모든 대량살상무기와 환경파괴와 극단적인 대립과 전쟁, 그리고 해결 기미가 없는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좀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또 그렇게 지속해 나갈만한 이성과 양심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역사를 공부한 탓인지, 과학적 유물론이라는 이데올로기 탓인지, 아니면 종교적인 신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극단적인 비관론자에 가깝다.


인간이란 종이 지배하는 지구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는 지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쓸 수가 없다.

단지 한가지만은 말할 수가 있는데 인간이란 종은 꿈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탐욕과 치열한 생존경쟁만이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라는 생각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종에게 정말 희망이 있는 것일까?


나는 없다고 본다.


[질그릇 하나에 담아야 할 것]


지금 나에겐 질그릇 하나가 필요하다

담아 두어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

어딘가로 흩어질까 사라질까 변색될까

노심초사하면서 질그릇 하나를 찾는다


내가 토요일 두 세 시간 광화문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일주일 내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톡까놓고 말해서 그들은 대부분 소위 ‘좌파 운동권’ 출신이다

허구한 날 정치권과 언론에 조리돌림 당하던 바로 그들 말이다


나는 그들 중 단 한 명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질그릇 하나를 구해

지난 겨울 그들이 흘린 땀과 거기에 담긴 꿈과 희망을

소중하게 담아서 간직하는 것뿐이다


[어설픈 통합과 화해를 향한 독설]


민주적인 사람은 없다.

민주적인 시스템만이 있다.


누구나 최선을 다해(감옥에 안 갈만큼) 권력을 추구한다.

그로 인한 무한 충돌의 역사적인 결과물이 민주적 시스템이다.


간혹 민주적인 사람들이 많아져야 민주적 사회가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여러가지 풍모가 '민주적'이란 형용어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종종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로 '민주적인 풍모'를 사용하는 것 뿐이다.


권력을 향한 욕망, 

좀더 순화된 표현으로 하자면 

가치와 이상과 꿈, 또는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실현을 위한 무한 충돌.

그것이 민주적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이고

그것이 민주적 시스템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 충돌을 회피하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도 없고, 그 필요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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