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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9. 2020

지적 오만의 뿌리

1.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러한 판단 중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은 무엇일까?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본다. 판단의 근거가 없거나 충분치 않을 때, 그 문제에 대해서 자신이 판단할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판단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잉 판단을 한다. 아주 적은 근거를 가지고 일단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이 이렇게 판단했다”는 것이 그 다음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사람들은 웬만해서 잘 물리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한 지식인인 경우 더욱 그렇다. 공적인 언술을 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아마도 좌파 지식인의 경우가 가장 심할 것이다.     


2.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매우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거나, 객관적인 팩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의 판단이다. 따라서 나의 판단은 나를 둘러싼 그물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합리성과 객관성이 나의 판단의 모든 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적 오만의 산물일 뿐이다.     


3.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그것에 근거해서 행동이나 실천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참으로 영악하기에 어떤 판단을 하기 전에 그러한 판단에 따라오는 책임과 이해관계를 충분히, 또는 본능적으로 산출한다. 그리고 그것에 합치되는 판단을 하게 된다. 어떠한 판단과 그것에 따른 실천이 일관성을 가지는 것은 대부분 이러한 ‘역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특성은 도덕과 책임, 일관성과 혁명성을 모두 겸비하려는 좌파 지식인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4.

사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몸서리치게 불편하게 만드는 어떤 판단을 해본 경험이 없다면 지적 오만이 나 자신을 속이는 것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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