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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13. 2020

잡문17

[밤]


나는 밤이 좋았다

나를 감싸는 고요함과 적막함을 사랑했다

FM 라디오의 음악과 멀리서 들리는 찻소리가 마음을 채웠다

아파트 창문의 마지막 불이 꺼지면

나의 눈은 홀로 반짝이며

잠든 이들의 꿈을 보듬어 주었다


어느 날부터인지 모른다

밤은 외로움의 기관차가 되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녀야 했다

밤이 되면 모든 이들이 나를 외면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나의 눈은 허공을 서성거렸다


[욕망]


한번 욕망을 품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이지만

그 욕망을 제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달이다.


삶의 이치가 정녕코 이런 것이라면

세상살이가 참 암담할 뿐이다.

욕망과 비욕망의 대결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고

욕망과 욕망의 피비린내 나는 무한대결 속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균형상태가 최선의 유토피아란 말이다.


만약 이게 어쩔 수 없는 진리하면

그 진리에 적응해서 사느니

그러한 진리를 잉태한 세상을 거부하리라.


[봄]


봄이

찾아오는 순간은

감격스럽고, 놀랍고, 짜릿하고, 황홀해서

모든 시인이 한번쯤은

이 순간을 노래했으리라.


그러나 그 어떤 언어로도

문득 다가온 2017년 봄을 설명하지는 못하리라.

봄은

그저 때 되면 찾아오는 자연의 이치도 아니고

홀연히 덮쳐오는 마법의 힘도 아니었다.


추위 속에서 촛불 하나를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것.

그것이 봄이었다.

우리가 봄이었다.


"쪽수로 겨룬다."

이게 민주주의의 모든 것인줄 알았는데

더 본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쪽수로 쫄게 만든다"이다.


[보석]


주얼리가게에 전시된 보석에

관심이 없다.

그게 귀부인의 목에 걸린다면

더욱 관심이 없다.


그러나 보석은 참 아름답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

평범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스쳐지나가던 나의 눈에

번뜩 들어오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보석인 것을

나만이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


가장 아름답다.



나는 담배를 필 때마다

영화 <사브리나>의 험프리 보가트가 되어

오드리 햅번을 만난다.


지난번에 만들어 놓은

담뱃갑 스티커를 처음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흡연자를 스트레스로 몰살시키려는

그 흉악한 사진들이

생각과는 달리

담뱃갑의 앞뒷면으로 다 있어서

그걸 모두 가리려면

좀 공력이 필요하다.


또 하루가 지나가고

너의 모습은 초췌해지는구나.

내가 너를 그곳에 남겨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손을 내밀지 못하겠구나.

난 그저 누군가가 너에게 입맞추길 기다릴 뿐.

그러나 하루하루 지날수록

빨갛게 윤기나던 너의 모습이 생기를 잃어가니

안타까움만 커져가는구나.

내일이면 아무도 더이상

너에게 입맞추려하지 않을 것 같아.

망설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망설이며

다시 닫는다.


---누가 사다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사무실 공용 냉장고 속의 딸기를 입맛 다시며 훔쳐보면서...


무인도에 한 사람이 표류하였다.

그는 죽음에 맞서서 싸워야 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과 싸웠다.

밤이면 달려드는 동물들과도 싸웠다.

비바람과도 싸워야했고

살을 에는 추위와 살을 파고드는 땡볕과도 싸웠다.


1년여가 흘러갔다.

마침내 자신만의 진지를 확고하게 구축했을 때

또 다른 한 명이 표류해 왔다.

그런데 일주일쯤 함께 시간을 보낸 후

그 사람은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렸다.


남겨진 그는 이제 보이지 않는 것과 싸워야만했다.

그것은 잡히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부여잡고 뒹굴어 정복할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외로움이라고 불렀다.


지난 9년 우리가 잃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구나.
아니 더 악화될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우리 마음 깊숙히 파고 들어 똬리를 틀었다.

그리고 이러한 꿈의 상실이
지금 우리의 선택을 강제하고 있다.
"제발 이 정도까지만이라도..."라는 생각.

이처럼 내면화된 꿈의 상실은
시작도 하기 전의 패배를 의미한다.

이제 다시 꿈을 꾸어보자.
그게 요동치는 민주주의 정치 공간이 제공하는
최대의 매력이 아닌가?

(2017.2.17)


[친구와 인맥관리]


제법 가르침에 일가견이 있는 성인이나 철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나는 친구는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좀 못난 친구도 있고, 부족한 친구도 있고,

생각이 틀린 친구도 있고, 나한테 뭐 벗겨먹으려는 친구도 있고,

이런 저런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가 있다고 본다.

우연의 산물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친구라고 내세우는 사람이 한결 같이

잘 나가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품격 고상하고,

흠결이 별로 없고,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어쩌면 그 사람에겐 친구가 하나도 없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친구를 사귄 게 아니라

인맥관리 하느라고 친구를 모두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친구라고는 순전히 별볼 일 없는 사람들만

주변에 두었던 예수가 젤로 괜찮아보인다.


[경륜장의 추억]


마지막 순간의 극적인 역전.

경륜의 매력이다.

그걸 현장에서 한번 보려고 오래전 경륜장을 갔었다.

거기서 못볼 것을 보고 말았다.

돈 지갑을 들고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반쯤 정신 나간 사람들.

놀음에 빠진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좀비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에게 둘러싸여 1시간 정도를 보낸 것은 참 끔찍한 경험이었다.

정상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그 괴이한 분위기를 오늘 시청에서 느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열심히 흔들어대는 그들의 모습은 

어떤 선입견을 다 제거하고 보더라도 경륜장의 충혈된 눈처럼 다가왔다.

(2017.2.11)


[사랑의 흔적]


종종

그것이

무의식으로 도피하는 이유는


그 무엇도

견뎌낼 수 없는

시간의 파괴력을 피하기 위함이다


마음은 평안을 찾는다

꿈은 지배를 받는다


[자연스러운 정치]


누가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말을 했다면

충분히 욕을 해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소통이다.


욕먹을 지 몰랐다면?

그럼 바보인거지.


[이 시대의 괴물]


최고의 권력은

청와대도 아니고

검찰도 아니고

조중동도 아니고

국정원도 아니다.


대권주자를 툭툭 낙마시키고

정당을 맘대로 헤집고

법원조차 눈치를 봐야한다.


그게

'여론조사결과'라는 건데('여론'이 아니다!!)

알다시피 여론조사는

매우 치밀한 기법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최종적인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여론조사결과'가 실제의 '여론'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 아무도 모른다.

'여론조사결과'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 자체로는 매우 중요하고 유의미하지만

'실제'를 얼마나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너무 중요해서 반복한 것임)


그런데 그것이 어느덧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스포츠에서 규칙 하나가 바뀌면

선수들과 팀의 전략과 전술이 모두 바뀐다.

지금의 정치는 여론정치가 아니라

'여론조사결과정치'이다.

"여론이 좋게 나오려면..."이 아니라

"여론조사결과가 좋게 나오려면..."이다.


딱히 다른 대안은 없다.


하지만 '여론조사결과'와 '여론'의 상대적 독립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하면

아마도 매우 파행적인

때로는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시인이 왜 시를 쓰는지 안다.

자기 마음을 고스란히 노출하자니

민망하고, 쪽팔리고, 한심해서

뭔가에 기대서 비비적 거리는 것이 시다.

가장 만만한 것이 자연이다.


나를 바라보며 물끄러미 서있던

그녀의 마지막 얼굴을

나는 읽을 수가 없었다.

편의점의 환한 불빛이

그녀의 표정을 실루엣으로 만들었다.


밤 하늘의 별을 보았다.

그중 하나가 방끗 빛났다.

나의 마음은 우주를 삼켰다.


다음날 아침

수십억년전에

우주 한 구석의

별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나는 면벽 수행 10년을 해야 도를 터득 하는 것이라면

그런 도를 거부하겠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극도의 절제력을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냥 대충 살다가 지구와 함께 몰락하기를 바라겠다.

나는 고도의 지적 능력과

세련되고 사려깊은 잘 훈련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민주주의는 그냥 포기하고 살겠다.


그냥 적당한 욕망을 가지고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보통의 문화를 접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답을 만들지 못하는 진리는

결코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쓸쓸한 물건들]


필요할 것 같아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몇 가지 샀는데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지금 책상 위에 펼쳐 놓고 보니

너희들 참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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