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테니슨의 서사시 <이노크 아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노크, 필립, 애니는 바닷가 소꿉놀이 친구로 자라나 성인이 되었고, 힘이 세고 남자답고 적극적인 이노크는 애니와 결혼을 하고, 착하고 소극적인 필립은 애니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으로만 간직한다. 그러던 중 이노크는 무역선을 탔다가 조난이 되었고, 필립은 10년 넘게 생활이 곤란한 애니를 돕다가, 마침내 애니도 이노크가 죽은 것으로 알고 필립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몇 년후 죽은 것으로 알던 이노크는 돌아왔다. 이노크는 멀리서 필립과 애니가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다가 죽는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연인, 그래서 그 연인의 친구와 사귀다가, 다시 연인이 살아서 돌아오는 3각관계 스토리는 어디서나 흔하게 등장한다. 어제 영화 <진주만>을 보다가 중간에 확 꺼버리고 사무실로 나온 이유는 바로 이런 스토리 때문이다. 그런대로 볼만 하다 싶어서 보고 있는데 죽었던 밴 애플렉이 돌아오면서 나의 '이노크 아든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짜증이 일었다.
왜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냐하면 초등학교 이원구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노크 아든을 나의 친구 박상욱과 같은 성격이라고 했고, 필립은 나와 같은 성격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매우 적절한 비유였다. 그런데 나는 이 스토리가 평생 상세히 기억될 정도로 깊히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필립의 역할이 몹시 싫었다.
아마도 분명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살아돌아온 연인으로 인한 3각관계 스토리만 나오면 아주 질색을 하는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