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로 Oct 13. 2020

이노크 아든 트라우마

40여년 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테니슨의 서사시 <이노크 아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노크, 필립, 애니는 바닷가 소꿉놀이 친구로 자라나 성인이 되었고, 힘이 세고 남자답고 적극적인 이노크는 애니와 결혼을 하고, 착하고 소극적인 필립은 애니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으로만 간직한다. 그러던 중 이노크는 무역선을 탔다가 조난이 되었고, 필립은 10년 넘게 생활이 곤란한 애니를 돕다가, 마침내 애니도 이노크가 죽은 것으로 알고 필립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몇 년후 죽은 것으로 알던 이노크는 돌아왔다. 이노크는 멀리서 필립과 애니가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다가 죽는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연인, 그래서 그 연인의 친구와 사귀다가, 다시 연인이 살아서 돌아오는 3각관계 스토리는 어디서나 흔하게 등장한다. 어제 영화 <진주만>을 보다가 중간에 확 꺼버리고 사무실로 나온 이유는 바로 이런 스토리 때문이다. 그런대로 볼만 하다 싶어서 보고 있는데 죽었던 밴 애플렉이 돌아오면서 나의 '이노크 아든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서 짜증이 일었다.


왜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냐하면 초등학교 이원구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노크 아든을 나의 친구 박상욱과 같은 성격이라고 했고, 필립은 나와 같은 성격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매우 적절한 비유였다. 그런데 나는 이 스토리가 평생 상세히 기억될 정도로 깊히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필립의 역할이 몹시 싫었다.


아마도 분명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살아돌아온 연인으로 인한 3각관계 스토리만 나오면 아주 질색을 하는 이유가...


매거진의 이전글 잡문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