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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13. 2020

아주 특별한 만남

낙타가 사막을 배회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방랑은 여우를 만나면서 끝난다.

멍한 눈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별똥별 하나가 반짝이는 순간 초점을 가진다.

나비가 하루 종일 봄바람을 타고 헤맨다면

그것은 아무런 종착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느 향기에 빨려드는 순간 방황은 끝난다.


대게가 그렇다.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종착지도 없이 시작하지만

그것이 끝나는 순간

‘방황’은

하나의 생명처럼 의미를 가진다.


지구에 태어나 55년 5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광화문의 훈데르트바서 전시회장 입구에서

그를 향해 순간 반짝이는 눈과 마주쳤다.

그의 손에는 어쩌면 몇 일후에는 쇠파이프로 바뀔 수도 있는

모형 횃불이 들려져 있었다.

그들은 서둘러 김밥집을 찾아갔다.

첫 만남은 이처럼 투박했다.


어쩌면 영원히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별 특별한 기대도 없이

우연이라는 시공의 폭력에 휘둘려서

그들은 고독의 끝물을 타고 마주쳤다.


둘의 삶을 합하면 100년.

그 긴 시간동안 그들은 수많은 흔적들을 남겼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첫 입맞춤이 왜 그토록 달콤한지도 알았고

심장의 박동 소리가 무슨 신호인지도 알았고

손끝으로 전달되는 따스함의 의미도 알았고

온몸의 세포들이 무엇을 갈망하는 지도 알았다.

그들은 프로페셔널이었다.


그런데

울림과 떨림과 곤두섬

소리와 신음과 웃음과 미소와 땀

이 모든 것들에

기시감처럼 지난 흔적들이 묻어나지만

세미하게 파고드는 아주 낯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대충 사랑이라고 퉁치면서

그들은 서투른 아마추어처럼

익숙한 초행길을 나선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망각의 횡포로 머릿속에서 지워진 길인지

시간의 파열이 만들어낸 단 하나의 새로운 길인지

그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끊어진 듯 이어진 듯 아스라한 그 길을

짙은 땅거미 따라 별빛에 의지하며 지친 발걸음을 내딛는 그 날

우연히 마주칠 늙은 부엉이가 알려줄 것이다.


“이 길은 오래 전에 있던 길이에요.

결코 새로운 길은 아닙니다.

당신들이 늘 걸었던 길이지요.

하지만 당신들이

과거에서 미래를 보지 않고

미래에서 과거를 보는 지혜를 가진다면

이 길은 당신들의 발걸음 앞에

늘 새롭게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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