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인간은 어슬렁거릴 때라야 비로소 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듯 홍상수의 인물들은 늘 여기저기를 배회한다. 삶의 밑바닥인듯 하지만 별로 각박하지 않고, 위기에 내몰린 듯 하지만 전혀 쫓기지 않는 주인공의 어슬렁거림은 감독 자신과 그 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늘 지고지순하게 솔직하다.
자못 신사연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는 주인공은 파리에서의 무료한 삶 가운데 서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그 리얼한 아다지오 템포의 접근은 기어이 생채기 하나를 파리에 남기고 서울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 무책임은 귀차니즘에 익숙한 한 남자의 실수가 아니라고 폭로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꿈 이야기는 깊고 은밀하게 침잠된 감정의 덩어리가 어느날 갑자기 폭발하는 미카엘 하네케의 '돌발성'을 생각하게 한다. 남자의 무책임과 실수는 기실 무의식 깊숙히 도사리고 있는 마초적 본능에 따른 것이라는 일종의 반전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