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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18. 2020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

크리스티안 문쥬

[그 어둠의 정체는 무엇인가?]



남성이 가지는 최대한의 책임과 여성이 실제로 몸으로 겪는 최소한의 고통 사이에는 어찌 그토록 큰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가?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 말이다.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카메라에 포착되는 그 칙칙하고 음산한 대학교 기숙사의 복도는 차우셰스쿠 정권의 말로를 표현한다손 치더라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이 영화는 이미 (영화가 만들어진 때로부터) 18년 전에 총살당한 루마니아 독재자를 부관참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지금도 거대한 힘으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권력, 차우셰스쿠 정권 정도로는 비견조차 될 수 없는 남성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며 도전이다.


임신 4개월 된 태아를 불법 낙태하는 룸메이트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 오틸리아의 불굴의 헌신은, 친구에 대한 우정, 곤경에 빠진 사람에 대한 동정심,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일에 대한 공포감, 이런 모든 것을 훌쩍 넘어서는 오로지 남성 위주로 짜인 성에 대한 통렬한 도전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감당해야만 하는 짓누르는 무게감은 친구의 몸에서 빠져나온 태아를 처리하기 위해 야밤에 음습한 도심을 이리저리 방황하는 아틸리아의 좌절과 공포로 표출된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이 "긴 어둠의 시퀀스"가 당신의 심장을 옥죄었다면, 낙태의 문제를 그 잘난 도덕성이나 고고한 생명관 이전에 인류 역사를 통해 도도하게 관통해온 성을 통한 권력관계, 그것의 청산 문제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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