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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18. 2020

<다가오는 것들>(2016)

미아 한센-러브

루소, 파스칼,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지젝, 쇼펜하우어, 레이몽 아롱, 엔첸스베르거, 레미나스, 유나바머, 칸트...

이런 철학자, 학자들이 영화 전편에서 슬쩍슬쩍 언급되는 영화.

그런데 따분한 철학 영화가 아니라

프랑스 중년 여성의 일상을 담담하게 다룬 영화.

젊어서는 한 때 공산주의자였으며

지금은 고등학교 철학교사인 주인공을 통해

프랑스 고등학생의 철학 수업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영화.

프랑스 가정에서 부부관계, 남녀관계가 어떻게

쿨한 방식으로 엮어지는 지를 살짝 보게 되는 영화.

고등학생의 시위와 무정부주의 철학자들의 산골에서의 대안적 삶이

별 특별한 것이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영화.

이혼(별거)한 남편이 짐 싸들고 나갔을 때

유일한 관심사는 어떤 책을 가져갔는지에 대한 것뿐.

자신의 메모가 쓰인 책을 가져갔다고 투덜대는 아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못 찾았다며

따로 챙겨달라고 메모를 남기는 남편.

우리가 결코 넘보기 힘든 그들만의 충만한 삶.

그러나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행복과 좌절, 탄생과 죽음, 사랑과 이별.

영화 전편에 걸쳐서 배경음악이 거의 없는 영화.

장례식에서의 교회 파이프 오르간 음악,

차를 타고 가며 CD로 흘러나오는 밥 딜런의 우상이었던 우디 거스리의 노래,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의 주제곡,

그 외 실제 '배경' 음악은 오직 두 장면에서만

한 곡은 슈베르트의 가곡 'Auf dem Wasser zu singen(물 위에서 노래한다)', 다른 한곡은 도너반의 Deep Peace.

영어로 대화를 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진보적 젊은이들.

사르코지가 TV에 나와 "프랑스에서는 시위가 더 많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영화.

2016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영화.

프랑스 북서부의 여행지로 유명한 '안개의 도시' 생말로에 있는 샤토브리앙(19세기 프랑스 낭만파 작곡가)의 묘지의 전경이 처음 씬으로 등장하는 것은 보너스.


[첨언] 너무나 휙 지나가서 잘 몰랐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이런 게 있더라. 남편은 칸트를 신봉하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자. 그런데 아내가 어머니 장례식 후 버스에서 눈물을 흘리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별거 상태인 남편이 새로운 애인과 다정하게 웃으며 지나간다. 이 장면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장례식 직후라는 사실에 초점을 두게 되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새로운 애인은 백인 여성이 아니라 이국적인 여성(피부가 많이 까무잡잡하고, 집시처럼 보이기도 하는...)이다. 아무래도 아내가 놀란 것은 그 연애 장면 자체 때문이 아니라, 보수적인 남편이 절대로 선택할 것 같지 않은 여성을 애인으로 삼았다는 것 때문에 놀란 것으로 보인다. 아내가 보여준 이 '놀람'의 감정은 매우 복합적인 문제이고 따지고 들자면 다양한 측면을 말하는 것이기에 아마도 감독은 휙 지나가게 처리하여 표현하되 숨겨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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