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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Sep 30. 2021

넌 '무'엇이니?

그들은 늘 존재에 대해서 말했다. 하긴 존재와 씨름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0을 거부했다. 두려워했다. 신이 존재를 창조했는데 0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어쩌면 신이 개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존재만을 사유했다.


'무' 또는 영원을 사유한 것은 동양에서였다. 하지만 그게 뭐 대단히 특출 나서는 아닌 게다. 존재와 씨름하며 달음박질쳐야 하는 삶의 조건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일 따름이다.


근데 사실은 인간은 '무'를 사유할 수가 없다. 느낄 수도 없다. 당연히 경험할 수도 없다. 인간이 생각하는 '무'는 결국 "무라는 존재"이다. 무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사유할 뿐이다.


이건 쉽게 추론할 수가 있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상태를 인간은 그 어떤 상상력을 동원해도 사유할 재간이 없다.


단 하나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사유의 주체를 '무'로 만드는 것이다. 즉 주체의 죽음이다. 그런데 그것도 말장난이다. 잠에서 깨어날 때라야 자신이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무'에서 벗어날 때라야 '무'였음 알 수가 있을 테다.


'무'와 존재 사이의 이 절대적인 심연이 생의 유일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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