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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Apr 12. 2022

박경리 <토지>의 변신

윌라 오디오북으로 운동할 때와 운전할 때 듣는 박경리의 <토지>를 이제 15권을 넘어서서 16권째로 들어섰다. 대략 13권쯤부터는 <토지>의 패턴이 완연히 달라진다. 긴박감 넘치는 플롯은 자취를 감춘다. 대신에 등장인물들의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한번 생각이나 대사를 시작하면 책으로 본다면 여러 쪽을 족히 넘길 만큼 길게 이어진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처럼 대화의 현실성은 무시되고 오롯이 대사의 내용에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을 담아 무겁게 이끌어간다.


그런데 말이다. 아주 미묘한 점이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토지>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김환, 김길상, 최서희의 내면으로는 거의 진입하지 않는다. 그 주변의 조연급들의 내면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면서도 이들 메인 주인공들의 머릿속으로는 파고들지 않는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박경리는 이들의 내면을 파악하는 일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것일까? 아니면 박경리 스스로 그들의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버거웠던 것일까?


사실 김환의 내면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동학의 장수 김개주의 아들로 동학 잔당들을 이끌어가던 김환의 내면세계는 개인의 삶과 동학의 기치를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나기도 하고 상상하기 어렵지도 않다. 김환의 별당아씨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묘사는 김길상-최서희 사이의 감정을 한 번도 제대로 헤집지 않은 것에 비교한다면 어리둥절할 정도로 집요하다. 어찌 되었던 김환은 동학의 평등사상과 민족주의를 대략 어우르는 아마도 정교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을 그래서 보다 행동적이었던 김환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그런데 김길상에 이르면 사정이 좀 다르다. 김길상 주변의 인물들, 이들의 조직적인 움직임과 물적 기반을 놓고 볼 때 결코 변변치 못한 서클식의 운동은 아니다. 거기에는 사회주의자들이 깊숙이 끼어들어 있고 노동자, 농민 등 하층민 출신들이 과반을 차지한다. 지식인들의 이론투쟁에 머무르는 사회주의 서클도 훌쩍 넘어선다. <토지>에서는 작가의 이야기든 등장인물의 대사든 간에 일제하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비판이 있다면 지식인들끼리의 움직임이라는 면에서의 비판일 뿐이다. 김길상 일파의 구성이나 움직임으로 볼 때 이는 우익 민족주의와는 확연히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조직이 사회주의라고 분명히 말하는 경우는 더욱더 없다. 아마도 이런 지점은 박경리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평등사상을 깊게 포옹한 민족주의"를 사회주의 말고 다른 무엇으로 이름 지을 수 없음에도 박경리는 이를 명시화하지 못한다. 이 또한 독자의 판단으로 남겨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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