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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May 25. 2022

'토지'가 사라진 <토지>

윌라 오디오북으로 박경리의 <토지>를 들은 지 거의 반년이 되는 듯싶다. 총 20권 중 지금 18권 중간을 넘어가고 있다. 운동을 하면서 듣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런데 요즘 고민에 빠졌다. <토지>에서 언제부터인지 '토지'가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략 15권 즈음이었을 것이다. 토지에 삶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1940년이 넘어서고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면서 일제의 수탈이 보다 악랄해지고 토지에 메인 사람들은 거의 죽을 먹으며 연명한다고 소설에 간단히 서술되었지만 실상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어찌 된 일인지 모두 그럭저럭 살아갈 만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여유 있게 사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독립운동에 관여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왜 <토지>가 이렇게 흐르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토지>의 스토리 중 가장 극적이랄 수가 있는 최서희와 김길상이 부부로 맺어지는 과정, 그러니까 참으로 미묘하고도 굴곡이 있었을 텐데 박경리는 이에 대한 묘사를 전혀 하지 않고 그냥 훌쩍 건너뛰었다. 그런 부분들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미묘한 남녀 간의 감정이라든가 갈등이라든가 하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상세히 묘사된다. 18권에 등장하는 애정의 삼각관계, 그러니까 송관수의 아들 송영광, 길상과 서희의 둘째 아들 윤국, 그리고 이상현과 기생이 된 봉순(기화)의 딸 양현을 둘러싼 엇갈리는 애정 관계는 심장이 느글느글해지도록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쯤에서 <토지>를 놓아야 할까?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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