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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n 21. 2022

<토지>의 끝물

윌라 오디오북으로 듣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마지막 20권째를 듣는 중이다. 그런데 19권 마지막 장의 제목이 '대결'이었다. 일제강점기의 막바지이기도 한 이때 어떤 중대한 대결의 장이 펼쳐지는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 장을 다 듣고 난 후에는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토지>의 주요 인물도 아니고 주변 인물의 인척쯤 되는, 그러니까 단 한 번도 소설에 등장한 적이 없는 한 소녀의 여성 중학교 기숙사 생활의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 소녀는 본래 내성적이고 말도 적은 편인데 일본인 기숙사 관리교사의 부당한 처사에 한번 대든 사건이 스토리의 전부이다. 그 부당한 처사라는 것도 기실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이고 대들었다는 것도 <토지>의 방대한 스토리 규모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일에 불과하다. 그 소녀는 선생에게 대든 이후에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소심한 성격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전후에 다른 아무런 이야기와 연속성이 없이 그것으로 끝난다.


이런 이야기에다가 박경리는 한자까지 곁들여서 '대결(對決)'이라고 장 제목을 붙였다. 이 장을 다 듣고 난 후 이것은 순전히 박경리 자신의 자전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소심했던 그녀에게 그 사건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었던가를 상상해보며 그저 흐르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박경리의 이력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박경리는 그 소녀의 상황과 똑같이 통영에 살면서 진주공립고등여학교를 1945년까지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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