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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n 25. 2022

완청(完聽) <토지>

- 두 가지의 생명

드디어 박경리의 <토지>를 윌라 오디오북으로 완청했다. 운동할 때와 운전할 때 들으면서 반년이 넘게 걸렸다.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시골 한 구석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들, 아니 우리 앞에 더 고된 시절이 기다린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들이 접한 해방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했다.


<토지>의 전반부를 들으면서는 우리의 위대한 문학적 성과란 생각이 들었지만 후반부를 들으면서는 사실 고개가 갸웃거리는 면이 많았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 일제강점기에서도 그런대로 교육받고 편히 살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졌고, '토지'에 발 붙이고 손 붙이고 흙과 땀이 하나가 되는 민중들의 삶은 저만치 멀어져갔다. 또한 스토리를 끌어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인품이나 용모가 뛰어난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품은 주로 그들의 넉넉한 삶에서 형성된 것들이다. 이들은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완성된 인간들이다.


이는 박경리가 접한 세상의 모습일 것이다. 박경리의 미덕은 그가 접하지 못한 세계의 일을 억지로 지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동학에서 시작하여 사회주의로 이어져가는 민족과 계급의 투쟁의 내면을 침투하지 않는다. 매우 피상적으로 그려져 있고 자세한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에피소드가 전개될 경우에는 점 어설프다는 점을 피할 수가 없다. 한편 작가가 피부로 맞닿으며 체험했을 세계에 대해서는 매우 정교하고 생생하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가 <토지>의 진솔한 리얼리즘을 만들어낸다.


서희와 길상이, 그들의 아들 환국이, 마지막 장면에서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연학 등은 거의 완벽한 인간들이다. 그렇기에 작위적이기도 하다. 독자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기는 하겠지만 문학의 캐릭터라기보다는 TV 드라마의 멋진 주인공들과 같은 느낌을 준다. 한편 <토지>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두 유형의 인물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마음이 꽂혀 있다. 그것은 임이네와 월선이다.


쉽게 표현하면 임이네는 악의 상징이고 월선은 선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이 둘은 모두 '생명'의 순수한 두 가지 양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만의 생명을 위한 무한한 욕망, 그 악착같은 힘의 원천으로서의 생명이 바로 임이네이다. 반면 흐르는 물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유유히 떠있는 구름처럼 자신을 비운 생명이 바로 월선이다. 나는 박경리가 이러한 생명의 탐구에 더 매진하지 않고 TV 드라마의 주인공들 같은 흠 없는 인물들로 후반부를 채워 나간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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