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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Sep 27. 2020

잡문2


[인생, 시간과의 전쟁]

0~10세, 공간의 확장에 현혹돼 시간을 훔쳐볼 여력이 없었다.

10대, 빨리 시간이 흐르길 앙망했다. 하지만 그때의 시간이 가장 풍성했다.

20대, 느린 시간을 델꾸 다니느라 힘들었다. 시간은 길게 늘어졌지만 제법 험악했다.

30대, 시간과 육신이 가장 호흡을 잘 맞추었다. 시간은 찰졌다.

40대, 어 어 하면서... 저 앞서가는 시간을 따라가느라 힘들었다. 시간이 잽싸다는 것을 비로소 인지했다.

50대, 눈 몇번 깜짝거리면 1년이 지나갔다. 시간은 허망하고 그리고 사악했다.


생각한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 소통한다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추상화'하는 언어의 놀이이다.


코끼리라는 단어를 추상화시키려면 

코끼리 한 마리를 사진으로 보는 것으로 충분할 지 모른다.


사과라는 단어를 추상화하려면 

5개의 사과 정도는 보아야 하고 그중 2개 정도는 맛을 봐야 한다.


고통이라는 단어를 추상화하려면 

제법 다양한 형태의 고통스런 일을 체험해야 하고, 

그렇게 고통을 추상화한 다음에는 

고통의 실체보다는 고통이라는 추상화된 단어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언어가 구체적인 실체를 배반하지 않고 찰싹 달라붙어 있다.


그런데 이것만은 늘 실체와 어긋나며, 

실체를 배반하고, 

실체에 부착되지 않고 미끄러져 버린다. 

아마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드는 사람은 행복하다. 

매일 밤 잠과의 지난한 씨름을 해야 하는 고통을 모를테니 말이다.


잠은 생명의 가장 신비한 부분이다. 

잠은 인간이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차라리 영원한 잠(죽음)은 의식적 선택이 가능할 터이지만 말이다.


잠은 의식이 스스로를 포기하고 히프노스에 굴복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즉 의식이 작동하지 않고 소멸하면서 이루어진다. 

잠을 자려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잠에 드는 순간은 누구도 의식적으로 경험할 수가 없다.


나의 방에는 

늘 작은 밤이 찾아온다.

건너편 건물의 창문들이

하나씩 밤을 훔쳐가면

나의 작은 밤도 숨는다.

내 곁에 바싹 붙은 작은 밤은

나의 졸린 눈에 박혀

더욱 작게 스러진다.


이 나이 먹어서야 이 책을 들춰보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이다.

대학생 때 아놀드 하우저로 예술사를 공부한 이후 

미대생이면 누구나 한 권씩 끼고 다니던 '교과서'였던 이 책이 왠지 고리타분한 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야 좀 읽어보니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풍부하고 날카롭고 친절하고 투명하고 젠체하지 않고 쉽다.


[도서관 책에 줄긋기]


30년 전에는 도서관 서고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후 얼마전 마을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까지 단 한 번도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타자기를 쓰던 사람이 30년만에 세상에 나와 바뀐 세상을 구경하는 것과 같았다. 


완전 도서관 촌놈이 되어 우왕좌왕 하다가 금방 모든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책을 빌리고 반환하는 것도 모두 전산화 되어 쉽고 편리하다. 당연히 도서관 책의 맨 뒷장 안쪽에 꽂혀 있던 대출 이력 카드도 사라졌다. 누가 이 책을 빌려보았나, 하고 그 리스트를 보는 쏠쏠한 맛이 없어진 것이다.


도서관 책에는 줄긋기나 메모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나는 이 상식이 종종 무시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다 읽은 500쪽 정도의 책에는 두 사람의 줄긋기가 있었다. 한 사람은 연필로 아주 세심하게 물결 표시로 밑줄을 그었고, 다른 한 사람은 볼펜으로 휙휙 밑줄 혹은 옆줄을 그었다. 책을 읽고 나니 그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 대략 감이 왔다.


나는 그 두 사람과 함께 책을 읽었고,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 받았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공간지각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

두뇌 회전은 늦어지고 명민함은 둔해진다.

이해력과 분석능력도 점점 저하된다.

무엇보다 집중력이 떨어진다.

아니,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을 지레 회피하려 든다.

아니, 어쩌면 집중력은 유지되는데, 집중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사이에 예리하고 깊은 크레바스가 형성된다. 그것이 기억력의 저하와 망각의 늪을 형성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퇴화를 어렴풋이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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