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야곱의 씨름, 한강의 씨름

by 로로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그가,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야곱이 말하였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어찌하여 나의 이름을 묻느냐?"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그는, 엉덩이뼈가 어긋났으므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성서의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야곱의 씨름에서 그 상대는 누구일까? 야곱 스스로는 그를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지만, 성서의 저자는 야곱의 주관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애매하게 처리하고 있다.


나는 씨름의 상대는 야곱 자신이라고 받아들인다.

야곱은 자기 자신,

자기의 존재 자체,

자기의 아이덴티티와 씨름을 한 것이다.


이 씨름의 의미를 한강의 시 <그때>(81쪽)에서 불현듯 떠올리게 된다.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인생'이라고 착각한 허깨비(자기 자신)와의 싸움도 눈두덩과 뱃가죽에 푸른 멍이 들만큼 힘겨운 것이지만, 실재의 '인생'은 씨름은 커녕 단지 잠시의 악수만으로도 손뼈가 바스러질 만큼 차원이 다른 상대이다.


야곱이 자신의 형인 에서 즉 '타자'와의 부딪힘의 성격을 전혀 판단/예측하지 못했듯이, 수많은 타자와의 부딪힘으로 이루어지는 실재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잠시의 악수만으로 나의 뼈를 바스러뜨릴 수 있는 압도적, 절대적, 불가해적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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