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강읽기

<저녁에 서랍을 열어 보았다>

- 어느 프로그래머의 詩 감상법

by 로로

60개의 서랍이 있었네


그중 4개의 서랍에 '아침'이 들어 있고

8개의 서랍에 '새벽'이 있고

'밤'은 10개의 서랍에

'저녁'은 15의 서랍에 들어 있네


계절은 꼬박꼬박 서랍에 담겨 있는데

'겨울'은 16개의 서랍에

'봄'은 7개

'여름'은 3개의 서랍에 들어 있는데

'가을'은 단 하나의 서랍에만 있네


이 서랍 저 서랍 열어보다 보니 헷갈리고

어떤 것은 서랍 깊숙이 박혀 있어서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도 있다네


그녀의 시그니쳐 '입술'과 '혀'가 똑같이 12개의 서랍에 들어 있고

'말(言)'은 7개의 서랍에 있네

섬뜩한 '심장'은 8개에

'눈(目)'은 유난히 많아 19개의 서랍에 들어 있고

'눈물'은 12개의 서랍에 있네


'영혼' '달' '잠' '꿈' '그림자' '하늘' '꽃' '노래' '돌' 등등은

3개에서 5개의 서랍에 들어 있었네


'흰색' 계통은 5개의 서랍에

'푸른' 계통(대부분 검푸르거나 시퍼런 형태로) 8개의 서랍에

'검정' 계통은 10개의 서랍에 들어 있었네


여기서부터가 진짜 저녁에 서랍을 열어 본 이유인데


'어둠'은 10개의 서랍에

'빛'은 18개의 서랍에 있는데

'빛'이 어떤 희망적인 느낌으로 놓인 경우는 드무네


'고통' 비슷한 것은 12개의 서랍에

유독 눈에 잘 띄는 '칼'은 7개의 서랍에 차갑게 놓여 있고

'피' 혹은 그 비슷한 자국은 18개의 서랍에 묻어 있고

'죽음' 혹은 그 비슷한 것은 21개의 서랍에 채워져 있네


뒤지고 뒤졌더니

4개의 서랍에서 '사랑'을 발견했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