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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택시>

- 몰래카메라? 칫!

by 로로

파나히 감독은 세 번째 장편영화 <써클>(2000) 이후 이란 정권의 탄압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는 감시의 눈을 피해 택시 안에서만 영화를 만들었고, 집안에서만 촬영한 영화도 만들었고, 2022년 <노 베어스>는 튀르키예와 가까운 변두리 시골에 몰래 잠입하여 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 <택시>에서 파나히 감독은 테헤란의 택시운전사가 된다. 영화는 모두 택시 안에서 촬영되었다. 파나히 감독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다큐와 드라마가 교묘히 엮여 있는 작품이다. 택시의 승객이 진짜 승객인지 아니면 배우의 연기인지 모호하기도 하다. 영화의 느낌은 다큐처럼 전개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택시를 탄 승객은 모두 연기자들(전문 배우이든 아니면 아마추어 또는 길거리 캐스팅이든)이다. 승객이거나 길을 지나는 사람 중에는 파나히 감독을 알아보고 인사하거나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이 영화의 등장인물이 몰래카메라로 찍은 다큐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택시 안과 밖의 명암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려면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카메라를 사용해야 하고 조명까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순수한 승객이 탑승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파나히 감독이 다큐적 느낌을 주면서 오로지 택시 안에서만 촬영을 하여 권력의 감시하는 눈을 피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놀랄만한 완성도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 의식 자체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강렬하지는 않다. 어쩌면 파나히 감독을 잘 알고 그의 영화를 봐온 관객만이 달콤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인지도 모른다. 대화 중에는 파나히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며 그런 대사들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대화 중에는 볼 만한 예술 영화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그중에 "한국의 김기..."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을 말하는 것이다.


파나히 감독의 조카로 등장하는 소녀가 학교의 영화수업 이야기를 하는 중에 교사가 "더러운(추한) 리얼리즘"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란의 권력이 파나히의 영화를 지칭하며 그렇게 부르는 듯하다.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이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승객으로 등장한다. 당연히 연속성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옴니버스 영화 스타일이 된다. 파나히 감독 작품 중에서는 비교적 가볍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단,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파나히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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