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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2005)

미카엘 하네케

by 로로

48세에 데뷔작을 만든 후 50대 이후에야 영화계에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만드는 작품마다 칸느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하얀 리본>과 <아무르>로 2번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왠만한 영화 매니아가 아니면 그의 영화 속에 가득히 담긴 고약함과 불쾌감을 견뎌내기 힘든 미카엘 하네케. 20세기 예술영화를 논할 때 늘 잉그마르 베리만로 수렴되듯이 21세기에는 하네케 감독으로 촛점이 모아지는 연유를 그의 주요 작품을 따라가 보면 수긍이 갈 수밖에 없다.


2005년 영화 <히든>은 프랑스어 원제로 Cache인데 단순히 "감추어진"이란 의미를 넘어 "은닉"이라는 어감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품위 있고 양식 있는 지성인 그리고 그런 지성인을 기반으로 축조된 사회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가해의 기억을 은닉한다. 하지만 무마되거나 잊혀지거나 지워진 흔적은 또 다른 은닉된 시선에 의해 자신을 드러낸다. 가해자는 의식적 정당화와 무의식적 자기 기만으로 오롯이 삶을 지탱하지만 피해자는 "용서의 핏줄기"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 <히든>의 포스터의 추상화 같은 빨간 선은 피해자의 목에서 쏟아져 벽에 그려진 것이다. 무엇이 그처럼 극적이고 단호하고 극악스러운 자기 파괴의 보복(또는 용서)을 선택하게 하는 것일까?


삶의 밑바닥에서 단단하게 나를 지탱하고 있는 기억과 자기 정당성 속에는 어느 순간 푹 빠져버려 허우적거려야 하는 어떤 은닉이 은닉된 것일까? 또는 한 사회가 지탱하고 있는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는 또 어떤 은닉이 은닉된 것일까? 결국엔 자신을 드러내고야마는 그 은닉의 실체는 결국 가해자의 품위와 피해자의 핏줄기로 또 다시 은닉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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