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대표작 <그래비티>와 <로마>보다 한참 전 2006년의 <칠드런 오브 맨>이 있다. 물론 <그래비티>와 <로마>의 완성도와 무게감에 밀려 다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쿠아론의 주제의식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가장 현실적인 인류의 종말론이며 가장 그럴듯한 디스토피아가 거기 담겨져 있다. 모든 인간이 불임이 된다는 비현실적인 설정도 어떤 초월적인 심판이란 의심을 슬쩍 비껴가며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비극적 현실로 다듬어진다. 그리고 오직 시민권을 가진 자들만의 사회를 군대가 지켜주고 그 바깥은 참혹한 환경 속에서 죽어가고 썩어가도록 내버려두는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그려지는) 그런 종말론적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몰락할 때 그리고 아무런 대안이 없을 때 실제로 이 세계가 직면하게될 세상 그 자체이다.
가장 매혹적인 것은 국가가 시민들에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자살약을 제공하고 홍보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조만간 아무도 감상하지 않을 미술품들을 수집 보관하는데 정렬을 기울인다. 아이러니 또는 문명의 관성이리라. 불임의 시대(지구상에서 가장 어린 나이가 18세이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인 사회) 진지하게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세력은 세상밖으로 추방된다.(Tomorrow호는 그린피스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기적과 같이 한 생명이 태어난다. "왜" "어떻게"는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단지 그 생명이 유일한 tomorrow의 희망일 뿐이다.
* 한국 개봉 제목은 "칠드런 오브 맨"이다. 왜 이런 의도적인 바꿔치기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원제는 Children of Men이다. 복수의 Men과 단수의 Man은 이 경우 전혀 다른 의미를 준다. 왜 굳이 "멘"을 "맨"으로 바꿔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