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로 Oct 03. 2020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

고상균

1.

이 책의 필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술을 마시며 누군가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고 나는 한 구석에 널부러져 잠을 청할 때였다.


2.

그후 약 10년쯤 가까이 지내면서 그는 술(특히 맥주)에 대해 강좌도 열고 글도 썼지만 내가 관심을 1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우선 내가 술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그것이 그의 본업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그만치 직업이 목사이다.


3.

그런데 어느덧 내공을 차곡차곡 쌓아서 마침내 책까지 냈으니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어서 이틀에 나누어 독파를 했다(170쪽 정도의 가뿐한 분량이다). 그리고 숙제를 해야 한다. "형! 제가 뭘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어~~ 그 책 나오면 다 읽어보고 대답해줄게"라고 얼버무린 것에 대해서 이제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4.

그는 술을 좋아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가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긴 내가 술자리를 거의 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치만 모르긴 몰라도 술을 무한히 애정하지만 결코 술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듯 하다.


5.

이 책은 나처럼 술에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방에 읽힌다. 어딘가에 연재한 글을 특별히 손 보지 않고 모아 낸 책인지라 약간 구성이 어수선한 점이 있지만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정도다.


6.

수도원 - 맥주 - 유럽역사(초기 및 중세 기독교사)가 어느덧 어렴풋이 하나의 맥락으로 잡히면서 더 많은 지식의 창고문을 두드리게 만든다. 라거나 에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겐 약간 불친절하지만 그 정도는 내가 무식한거겠지, 라고 넘길 수 있다.


7.

내가 이 책에 대해 칭찬만 늘어놓을 수는 없는 것이 저자는 지금 박사논문을 열심히 써야할 처지인데 다 때려치고 이 길로 매진할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차라리 박사논문을 "술과 기독교"로 잡았으면 신나라 하며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8.

세상엔 온갖 비평이 많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이 음식 비평일 것이다. 미각과 후각의 오묘함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당췌 가능하기나 할까? 거기다가 범위를 술로, 그리고 또 한 단계 더 좁혀 맥주로 한다면 비평에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형용사 몇 개를 넘기기 어려울 듯이 보이건만 이 책을 읽는 와중에 그리고 다 읽은 지금, 그 수 많은 맥주의 맛을 경험하고자 마트로 달려가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매력덩어리라는 뜻일게다.


9.

"도대체 술은 인간에게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종교는 인간에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풀어나가는 것이 저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듯이 보인다. 어느 해답을 먼저 찾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시 신이 거나하게 술에 취하면 알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