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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4. 2020

<채식주의자>

한강

1.

우주의 운행을 주무르는 어떤 존재가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해달라는 청을 받고는 "생명은 너무 과대평가되었다."라고 답한다.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B급 SF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이 대사는 둔탁한 망치처럼 나의 뇌를 띵 하게 만들었다.


2.

모든 윤리, 모든 철학은 '생명'에 대한 조건 없는 절대적 가치 부여에 기반한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생명의 가치를 부정한다면 기실 아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도 "왜 생명이 가치있냐?"고 묻지 않는다. 사실 이 질문 자체가 모순이다. '가치'라는 단어가 이미 생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3.

모든 위대한 사상이나 철학은 죽음 또는 죽임에 대한 격렬한 저항에서 출발한다. 죽음을 초월하거나, 어루만지거나, 옆에 두고 공존하는 것도 결국엔 모두 생명을 위한 것이다.


4.

그래서 "왜 죽으면 안돼?"라는 영혜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등장인물뿐만이 아니라 독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다. "오히려 무자비한, 무서울 만큼 서늘한 생명." 이 한 마디가 한강이 우리에게 던지는 무자비한 도전이다.


5.

죽음을 찬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피의 향연 위에서 존립하는 '죽음보다 차가운 생명'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뿐이다. 생명 아닌 상태로의 역진화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구토유발자'적인 그로테스크다.


6.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같아."라는 영혜의 혼잣말이 어떤 해방의 키워드처럼 슬쩍 스쳐가지만 그리 설득력 있게 전개하지는 않는다. 영혜는 죽지 않는다. 차가운 생명을 거부하고 뜨거운 죽음도 선택하지 않는다. 너무나 과대평가된 생명 속에 감추어진 죽임의 향연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지는 못한다. 단지 '채식주의자'로 낙인 찍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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