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하네케
[은닉된 야만, 유예된 식민지]
20세기 후반 영화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으로 수렴되고, 21세기 영화는 미카엘 하네케로 수렴된다. 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네케는 <하얀 리본>(2009)과 <아무르>(2012)로 칸느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했지만 1997년 <퍼니 게임>, 2001년 <피아니스트>, 2005년 <히든>은 더욱 문제적이고 충격적이다.
<히든>은 1961년 10월 17일 프랑스 거주 알제리인들의 시위를 진압하며 1만 명 이상을 구속하고 수 백 명을 잔혹하게 학살하여 시체를 센느강에 버린 프랑스의 숨겨진 흑역사를 바탕에 깔고 있다. (놀랍게도 프랑스 정부는 1998년에 이르러서야 이 사실을 인정했다.)
역사는 '은닉'되지만 또한 '은닉'된 시선을 통해 되살아난다. 은닉된 야만은 평화로운 일상성 속에 똬리를 튼 채 스스로 폭로되기를 기다린다. 압제자들에겐 멀고도 먼 옛이야기로 뇌리에서 사라질 지 모르지만 억압당한 자들에겐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포스터에 흩뿌려진 붉은 피를 보라!)
프랑스에 알제리가 있다면 일본에는 한반도가 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저지른 야만과 폭압과 수탈에 대해 단 한 번도 부끄러이 눈을 지긋이 내리깔아본 적이 없다. 일본의 지배계급은 20세기 이래 흔들리거나 균열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들의 눈에 한반도는 여전히 자신들의 유예된 식민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