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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Oct 03. 2020

<사탄탱고>(1994)

벨라 타르

[벨라 타르와 홍어]


홍어맛을 알게 된 것은 순전히 배고픔 때문이었다. 어느 단출한 모임에 허겁지겁 허기져서 갔는데 내놓은 것이라곤 홍어뿐, 왠만해선 낯선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날은 어쩔수 없이 어기적어기적 목구멍을 넘겨버렸다. 몇 일 후 그 맛이, 그 향기가, 그 식감과 함께 되살아나 은밀히 끌어당길 줄이야...


수잔 손택이 "현대 영화의 구세주"라고 극찬하며 헝가리 영화감독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를 매년 한번씩 다시 본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아마도 2~3번 본 걸 가지고 너무 과장한 것이겠군,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94년에 만들어진 <사탄탱고>는 무려 7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고약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제에서나 상영될 뿐 일반 영화관 개봉이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원작소설 「사탄탱고」를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하면서 출판사가 그 기념으로 <사탄탱고>의 영화관 상영을 기획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맨부커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은 헝가리 작가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벨라 타르의 대표적인 세 작품 <사탄탱고>, <토리노의 말>(2011),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2000)는 모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와 함께 작업을 한 것이다.


음산하고 삭막하고 황량한 배경에 웃음과 온기를 상실한 등장인물들의 생존본능만이 스산하게 흔들리는 종말론적인 내용의 이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은 도대체가 결코 쉽지 않다. 영화 전체가 한 커트 당 2~8분에 이르는 롱테이크로 악명높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물론 당연히 흑백이다.


<사탄탱고>는 다른 두 영화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비교적 단순한 내용이기에 스토리만을 이어붙이면 1시간짜리로 편집이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홍어의 맛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 특유의 음향효과와 배경음악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벨라 타르의 영화는 단 5초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이라도 5분의 롱테이크를 견뎌야 그 맛을 음미할 수가 있다.


450분의 <사탄탱고>를 이틀에 나누어서 봤는데 첫 날 150분을 보고는 "역시, 힘들군"하고는 나머지는 좀 훗날로 미루려고 했다. 그런데 이튿날이 되니 자꾸 자꾸 생각이 난다. 카프카의 <성>을 읽을 때와 비슷한 그 느낌과 분위기가 질기게 머릿속을 휘졌는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수산 손택의 말이 과장된 뻥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나 또한 조만간 다시 찾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2시간 30분짜리 <토리노의 말>도 3번을 봤듯이 말이다. 어쨋든 홍어맛을 한번 알게 되면 그 맛의 기억을 떨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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